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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일본 여행

by 大建 2008. 2. 27.

이전 글 - [사진/여행] - 일본 : 오사까 - 히메지 (07/5/28)



작년 5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 일본 여행을 했다.

장성의 프란치스꼬의집에 계시는 성프란치스꼬병원수녀회의 가브리엘라 수녀님이

올해로 수도서원 금경축(50주년)을 맞으시고

또 이 수도회의 유일한 한국인인 박 빠치스 수녀가 종신서원을 하게 되어

수녀원 측으로부터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부터 5년 전, 당시에 이 수녀회 성소자들의 영적지도를 맡고 있었는데

박 빠치스 수녀의 첫 서원식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빠치스 수녀와의 인연이 이렇게 각별한 모양이다.


5월 29일 광주에서 동행하는 바실리오 형제와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그마치 4시간 40분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정동의 니꼴라오 형제와 합류하여

수속을 끝내고 오사까(大阪) 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여행이 처음이 아님에도 언제나처럼 마음이 가볍게 설레인다.

여행은 항상 나를 즐겁게 한다.

새로운 문물,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사까 간사이(關西)공항에서 마중나온 요한 형제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꾸노(生野)의 수도원으로 향한다.

지난 5월 27일부터 6월 2일까지 일본 여행을 했다.

장성의 프란치스꼬의집에 계시는 성프란치스꼬병원수녀회의 가브리엘라 수녀님이

올해로 수도서원 금경축(50주년)을 맞으시고

또 이 수도회의 유일한 한국인인 박 빠치스 수녀가 종신서원을 하게 되어

수녀원 측으로부터 초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은 처음이 아니다.

지금부터 5년 전, 당시에 이 수녀회 성소자들의 영적지도를 맡고 있었는데

박 빠치스 수녀의 첫 서원식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빠치스 수녀와의 인연이 이렇게 각별한 모양이다.


5월 29일 광주에서 동행하는 바실리오 형제와 인천공항으로 가는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자그마치 4시간 40분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정동의 니꼴라오 형제와 합류하여

수속을 끝내고 오사까(大阪) 행 비행기에 오른다.

비행기 여행이 처음이 아님에도 언제나처럼 마음이 가볍게 설레인다.

여행은 항상 나를 즐겁게 한다.

새로운 문물, 새로운 만남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사까 간사이(關西)공항에서 마중나온 요한 형제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이꾸노(生野)의 수도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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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꾸노 수도원에 있는 가난한 이들의 머머니 상

수도원에 도착하여 그곳 형제들과 환담을 하고 일본에서의 첫 밤을 지냈다.


참고로 오사까의 이꾸노구는 재일교포들이 몰려 사는 지역이다.

이곳에 있는 본당의 신자들도 일본인과 한국인이 50:50 정도의 비율이다.

따라서 이곳에는 한국인 신자들의 사목을 위하여

한국에서 홛동하다 귀국한 일본관구의 나까무라 신부님과

한국관구의 요한 형제가 봉사하고 있으며 한국순교복자수녀회 소속 수녀들도 함께 일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서둘러 수녀원이 있는 히메지(姬路)로 향한다. 오사까의 수도원으로부터 1시간 반 정도 걸리는 거리이다.


미사 시간까지 여유가 있기에, 장성에서 일하고 계신 데데오 수녀님의 안내로 병원을 둘러본다.

성프란치스꼬병원수도회가 운영하는 종합병원으로 히메지에서도 제법 알려진 성마리아병원이다.

5년전에 왔을 때보다 수녀원과 병원이 증축되어 있었다.


미사의 주례는 오사까 대교구의 이께나가 준 레오 대주교님이 하셨으며, 나와 니꼴라오 형제, 인근의 일본 사제형제들, 몇명의 관계되는 수도사제들, 그리고 도꾜에서 교포 사목을 하고 있는 김 신부가 함께 집전하였다.

미사 후 축하 파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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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께나가 주교님, 은경축 수녀님, 가브리엘라 수녀님, 박 빠치스 수녀님

수도서원은 수도자가 복음의 정신대로 공동체 안에서 순명, 청빈, 정결을 지키며 살 것을 하느님과 교회 앞에서 엄숙하게 약속하는 것이다.

수도자도 인간일진대 어찌 어려움이 없겠는가...! 그러나 그러한 인간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50년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살아오신 가브리엘라 수녀님께 존경을 표하며, 이제 그러한 삶을 평생토록 살기 시작하는 박 빠치스 수녀님께 격려를 드린다.

이러한 요지의 인사말을 하고 수녀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린 다음

요한 형제와 함께 히메지 성을 보기 위하여 출발하였다.히메지성은 원래 158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것이었으나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일본 서부 제1의 군사 기지이자 도쿠가와 일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했다. 히메지성은 일본에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히메지성은 원래 158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것이었으나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일본 서부 제1의 군사 기지이자 도쿠가와 일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했다. 히메지성은 일본에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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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메지성은 원래 1580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건립한 것이었으나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일본 서부 제1의 군사 기지이자 도쿠가와 일족의 권력을 상징하는 건축물로 자리매김했다. 히메지성은 일본에서는 최초로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다음 날  우리는 오사까와 고베(神戶)를 들러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먼저 우리는 오사까 대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향하였다.

현재 일본의 전체 가톨릭 신자 수는 약 45만명 정도로 교세가 극히 미약한 수준이다.

그러한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주교좌성당의 규모는 약간 초라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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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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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정면의 벽화. 성모님 양편의 인물들은 일본 성인들이라고 하는데 이름은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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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전경

대성당을 나와 우리는 오사까와 인근 고베를 그야말로 주마간산(走馬看山)이 아닌 走車看山 격으로 둘러보았다. 도심지는 도꾜에서 많이 보게 될 것 같아 가장 중요한 유적지인 오사까 성만 방문하였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긴 현수교라고 하는 고베의 아카시 대교(明石大橋)와 인근의 공원을 둘러보고 귀원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짐을 꾸려 이꾸노의 형제들에게 작별을 고하고 길을 나섰다.

먼저 나라(奈良)에 있는 도다이지(東大寺)를 방문하였다. 이 절의 대웅전은 세계 최대의 목조건물로 알려져 있다.

어제 아카시대교와 오늘 도다이지를 보고 느낀 점은

한국에서 누군가가 일본은 축소지향형의 사회라고 하였지만 그 말은 전혀 옳지 않은 말이라는 것이다.


도다이지를 떠나 우리는 우리나라의 경주와 비견할 수 있는 교또(京都)로 향하였다. 794년 나라(奈良)시대가 끝나면서부터 메이지유신(1868년)까지 약 1100년 동안 교또는 일본의 수도였다. 천년 고도답게 교또 시내는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는 먼저 세계 문화유산으로 유명한 킨카쿠지(金閣寺)를 거쳐 신사와 사찰과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이름을 잊었음)을 둘러보며 게이샤 분장을 한 여인네 들도 만나고 간단한 기념품 쇼핑도 한 후,

역시 세계문화유산인(교도에는 세계문화유산이 많다) 산쥬산겐도(三十三間堂)에서 천불상과 엄청난 크기의 불당을 보고 감탄을 자아낸 후 다시 호류지(法隆寺)에 도달하였다. 역시 세계문화 유산인 이곳에는 일본에 불교를 전한 왕인박사의 숨결이 남아있다.

교또를 둘러보며 이렇게 종교심이 강한 나라에서 왜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보다 깊은 학술적 접근이 필요하겠지만 나름대로 내가 분석한 것은

1. 유일신 사상이 없다는 점이다. 범신론에 가까운 그네들의 심성에는 유일신 사상이 파고들 여지가 없다. 

2. 이러한 범신론적 신관은 자연히 그들을 기복신앙으로 빠져 들게 한다. 불교의 사찰에도 신사에서 쉽게 발견되는 기복적 물건의 판매나 등재 권유가 일반화 되어 있다. 

이러한 기복신앙에는 인생의 지침으로서의 종교가 받아들여지기 힘들 것이다.

우리는 교또의 중심 번화가를 걸으며 현대 도시의 맛을 느끼기도 하고 커피 한 잔을 즐기고 있는데

갑자기 천둥 번개와 함께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바람에 산책을 멈추고 택시를 잡아타고 교또 시내에 있는 "프란치스꼬의 집" 수도원으로 향하였다.

이 수도원은 교또에 있는 작은형제회의 유일한 수도원이다.

현재 네덜란드 형제 한 명이 관리를 하고 있는데  이 수도원에는 일본 순교 성인 26위의 행적과 유품 일부가 전시되고 있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성지(관리센터) 인 셈이다.

베드로 밥티스타와 2명의 작은형제들, 그리고 대부분의 재속프란치스꼬회원과, 예수회원이었던 바오로 미끼 등 26명의 순교자들은 이곳 교또에서 체포되어 약 1000리 길인 나가사끼까지 죽음의 행진을 하여 그곳에서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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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경당. 다다미 바닥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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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베드로 밥티스타

순교 성인들의 전구를 느끼며 이 수도원에서 편안한 밤을 지낸 후

아침에 모처럼 우리끼리 한국어로 미사를 봉헌한 후

우리는 도꾜(東京)으로 향하기 위해 신간센(新關線) 고속열차에 몸을 실었다.

빠르고 쾌적한 신간센... 우리나라 KTX는 언제까지 적자타령만 할 것인지...--

도꾜역에 도착하여 택시를 타고 로뽄기(六本木)에 있는 수도원에 도착하니 일본 형제가 기다리고 있다가 반가이 맞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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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뽄기 수도원, 작은형제회 일본관구 본부 수도원이다

점심식사를 하며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우리는 도꾜 정복에 나섰다.

오늘 오후는 우선 신주꾸(新宿) 거리를 둘러보기로 했다. 신주꾸 거리를 거쳐 도초(都廳) 스카이라운지에 오르니 도꾜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신주꾸를 걸으면서 유럽 어느 곳에서도 느껴 보지 못했던 묘한 생각이 들었다. 도꾜에 비하면 서울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는 것...-- 

도초에서 내려와 모 형제의 고집대로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로 향한다. 아무리 단순한 관광-구경이지만 가고 싶지 않은 곳인데... 결국 입구에서 나는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일행을 기다렸다. 나는 아직 국립 현충원 '구경'도 못했기에 양심에 걸리기 때문이다.

역시 여행은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해야 편한 모양이다.

일찍 수도원에 귀원해 식사를 하였다. 한국에 몇번 다녀간 스위니 형제가 식사에 오지 않았다면 정말 식사 시간이 삭막할 뻔 하였다. 어떤 일본 형제는 영어를 곧잘 하는 듯 하면서도 전혀 사용하지를 않고 자기들끼리만 지껄인다.

우리 수도원에 외국형제가 오면 이렇게 하지는 않는데...

다음날 아침 도꾜에서 말을 배우고 있는 라우렌시오 형제가 일찍 도착하여 함께 도꾜 구경에 나선다.

이곳에 사는 사람이니 어제보다는 덜 헤매겠지... 하지만 착각이었다! ^^

긴자(銀座) 거리를 걷다가 전자상가를 구경하고 싶다는 일행 때문에 또 짜증스럽게 한참을 기다린 후

아사쿠사(?草) 로 향한다. 이곳에는 같은 이름을 지닌 절과 신사가 특별한 경계도 없이 맞붙어 있다.

가미나리몬(雷門)부터 절 입구까지는 똑같은 등으로 장식한 상가가 형성되어 있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다음 행선지는 오다이바(お台場海浜公園). 모노레일을 타고 간다. 해변의 카페테리아에서 음료수를 마시며 몸과 마음을 식힌 다음 행선지로 고쿄(皇宮)와 니쥬바시(二重橋)로 정했다. 비록 왕궁이 개방은 되지 않지만 여행안내책자에 나온 사진이 내 마음을 끌었기에 내가 우겼다! ^^

왕궁 앞에 도착하여 마음껏 사직은 찍은 후 우리는 이제 로뽄기 지역을 둘러보기 위하여 떠났다.

로뽄기는 서울의 강남 같은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들어 개발이 많이 진행되어 고층빌딩과 고급주택가들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뽄기의 자그마한 식당에서 일본의 가정식 식사를 즐 긴 후 나는 먼저 수도원으로 들어오게 된다.

야경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어제 오늘 많이 걸어 발에 물집이 생겼기 때문이다.

형제들이 돌아오자 우리끼리 휴게실에서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지내고 있는데, 선교사로 나가 있는 일본 형제가 합류하여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일찍 서둘러 우리는 나리타 공항으로 향하였다. 역시 미숙한 가이드 덕분에(!) 우리는 조금 오래 걸리는 전철을 타게 되었다. 그러나 공항에는 늦지 않게 도착하여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두번째 일본 여행이었지만 처음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가 욕도 많이 하지만 배울 것도 많은 나라 일본... 어쨌거나 일본은 우리의 이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