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양치기 개

by 大建 2008. 4. 13.

부활 제4 주일, 성소주일

사용자 삽입 이미지

1. 스페인에서 유학하던 시절, 방학을 시골에 있는 어느 수도원에서 지낸 적이 있다.
산책을 하던 중, 양떼를 몰고 가는 초라한 목자와 마주쳤다.
인사를 나누고 몇 마디 대화한 후에 바로 복음 말씀이 생각나서,
"정말, 양들이 목자의 소리를 알아듣는지?" 물어보았다.
그 목자는 서슴없이 "그렇다"고 하였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자기는 양들 한 마리 한 마리를 다 안다고 하였다.
50여 마리 되는 양떼였는데 어떻게 구별하느냐고 하였더니,
생김생김 특징이 다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러한 특징을 이름삼아 지어 주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귀 큰 놈", "배에 큰 점" 등...
(과연 주님은 거짓말을 안 하셨구나! 목자의 일에 대해서 정확히 알고 계셨다.)
목자가 참으로 정성들여 양떼를 돌보고 쉼 없이 이름을 부르고 소리를 쳐 대니,
양들은 목자의 소리를 알아들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2. 언젠가 신문에서 주인을 도와서 양떼를 돌보는 돼지에 관한 영화가 나왔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어쩌다 돌연변이로 그런 돼지가 생길 수 있겠지만 주인을 도와 가축을 잘 돌보는 것은 역시 개다.
우리가 흔히 셰파드라고 부르는 종은 양치기들이 데리고 다니는 개다.
어떤 영화에서 보니, 목자가 휘파람을 한 번 부니까 개가 뛰어가서
무리로 부터 떨어져 나가는 양들을 안쪽으로 몰았다.
평소에 훈련이 잘 되어 있어 주인과 충분히 교감을 이루기에 그럴 것이다.

3. 성소주일이다. 사제로서 살아가면서 내가 목자인 척 하고 살아 왔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닫는다. 나는 한 마리 "양치기 개"일 뿐인 것을... 정작 양들을 돌보는 것은 주님의 몫이다.
나는 그저 주님께서 휘파람을 불면 쫓아가서 양들을 불러 모으면 되는 것이다.
나 자신 잘 훈련된 개이지 못했기에, 즉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익숙치 못했기에,
주님과 충분한 교감을 이루며 살아오지 못했기에,
지금까지의 사제 생활은 그토록 힘이 들었음을 솔직이 고백한다.

4. "양들은 주인의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목자의 음성이 귀에 익기에 그를 따라간다".
진정 우리는 목자, 주님이신 그분의 목소리를 잘 듣고 익히려고 노력하고 있는가?
매일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의 특성을 헤아리며 각자를 불러주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