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mm113 안의 향교 이전 글: http://adoro.tistory.com/2889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안의향교였다. 하지만 아무도 찾는 이가 없는지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성종 4년(1473) 현감 최영이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영조 12년(1736)에 다시 짓고 그 뒤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건물은 출입문인 재천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학생들의 거처였던 회우재·출숙재, 사당인 대성전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인데 이것은 평지에 세워진 향교의 일반적인 전묘후학 배치와는 어긋난다. 따라서, 이것을 보안하기 위해 대성전의 기단과 층계.. 2015. 5. 19. 광풍루 이전 글 : http://adoro.tistory.com/2888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광풍루다. 이 누각은 안의면 소재지의 진입로 입구, 금호강(錦湖江)변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태종 임진(1412)에 이안[利安 (현 안의면)] 현감 전우(全遇)가 건립하여 선화루(宣化樓)라 칭한 것을 세종 7년 (1425) 김홍의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고, 조선 성종25년 (1494)에 안의현감 일두 정여창이 중건하여 광풍루(光風樓)로 개칭 하였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92호다. 2015. 5. 18. 허삼둘 가옥 사진반에서 남강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별 작업과 개인작업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 조에는 함양 부근이 배당되었다.어느 날 조원들이 함께 출사를 다녀왔다. 이 날의 테마는 함양군 내 남강변의 유적, 고택 등이다.먼저 우리는 허삼둘 가옥으로 갔다. 허삼둘 가옥은 경제권을 가졌던 안주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며 갑오개혁이후 사회전반에 걸친 변화와 더불어 주택의 규모나 형태를 규제하지 않게 되었고 경제력을 갖게된 신흥 부농들이 양반의 주택을 본떠 만들게 됨으로써 생겨난 집의 하나라고 한다. 1918년 윤대흥이라는 사람이 부인 허삼둘과 지은 집이라는 글이 적혀 있다. 다음 글 : http://adoro.tistory.com/2889 2015. 5. 17. 순교자 윤봉문 요셉 성지 재속프란치스코회 행사 관계로 평의원(임원)들과 함께 순교자 윤봉문 요셉 성지에 답사를 다녀왔다. 거제도 진목정 족박골(현 옥포)에는 ‘거제의 사도’로 불리는 순교 복자 윤봉문 요셉의 묘가 있었다. 신유박해 당시 신자들의 유배지였던 거제도에 병인박해 직전 리델 신부가 전교를 위해 다녀가면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고,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8년경 박해를 피해 거제로 들어와 진목정에 정착한 윤사우 스타니슬라오가 활발한 전교활동을 펼쳤다. 윤봉문은 윤사우의 둘째아들로 진 아녜스와 혼인하여 아들딸을 낳고 살면서 형 경문 베드로와 함께 신자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전교에 힘썼다.1887년 겨울, 대구 본당 초대주임인 로베르 신부가 거제도를 방문했을 때 신부를 안내하고 교리교육과 공소예절을 돕던 윤봉문은 회장으로 임.. 2015. 5. 11. 순천에서 이전 글 : http://adoro.tistory.com/2877 청해진을 떠나 우리는 순천만 부근에 예약해 놓은 펜션으로 향하였다. 도착하여 보니 이 펜션은 마치 기업형으로 운영하는 곳 같았다. 청산도에서 묵은 펜션과 숙박비는 같았지만 훨씬 크고 여러 모로 편리하였다. 다만 그릴을 대여해주는 비용이 너무 비싼 것이 흠이었다. 어쨌거나 펜션에서 바라다 보이는 석양을 평화로이 감상하고 우리는 휴식에 들었다. 다음 날 우리는 순천만자연생태공원으로 향하였다. 오래 걷는 것이 불편한 수사님이 계시기에 용산의 전망대까지는 가보지 못하고 갈대밭을 데크 사이로 산책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그곳을 떠났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순천만정원이었다. 몇년전부터 순천만정원박람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한번 와 보고 싶었.. 2015. 5. 8. 장보고 유적지 이전 글: http://adoro.tistory.com/2876 청산도에서 완도로 배를 타고 나온 다음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순천으로 향하기 전에 완도에 있는 청해진 장보고 유적지로 향하였다. 청해진은 통일신라 흥덕왕 때 장보고(張保皐) 장군이 만든 해상기지이다. 장보고는 이 청해진을 근거로 해적을 소탕하고 일본과 중국 등의 해상 무역을 장악했다. 그러나 장보고의 힘이 너무 강해지는 것을 두려워했던 신라에 의해 장보고가 암살당했고 그가 죽은 뒤 청해진은 역사 속으로 묻혀 버렸다. 그 흔적을 발굴 복원해 놓은 곳이 완도의 청해진 유적지다. 청해진 근처에는 장보고의 업적을 살펴볼 수 있는 장보고기념관이 있다. 그곳에서 잊거나 몰랐던 청해진의 영웅 장보고와 그의 업적에 대해 다시 상기하는 시간을 가지고 우리는.. 2015. 5. 7. 이전 1 ··· 12 13 14 15 16 17 18 19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