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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좁은 문

by 大建 2015. 6. 23.

연중 제12 주간 화요일(마테 7,6. 12-14)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틀레헴 성지에 가면 우리 작은형제회에서 관리하는 성당이 있다.

그런데 이 성당에 들어가는 문은 폭도 몹시 좁아서 한 사람 씩 들어갈 수 밖에 없고,
높이도 낮아서 우리 동양인들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이니 서양인들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문이 그렇게 만들어진 연유는 다음과 같다.

이스라엘의 성지는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교와 회교도 간에 빼앗고 또 빼앗기는 쟁탈전이 치열했던 곳이다.
15세기경(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회교도가 베틀레헴의 성지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 회교도의 수장(술탄)이 그 성당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장소에 세워진 성당이라는 것을 알고는
"그렇게 거룩한 예언자가 탄생하신 곳이라면, 누구든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고 하여
문을 좁고 또 낮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그문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
오늘날도 수많은 순례객들은 "할 수 없이"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 한다.


흔히 우리는 높은 경쟁률을 뚫고 어떤 것에 성공했을 때 "좁은 문"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 그리로 가는 사람이 많지만 생명에 이르는 문은 좁고 또 그 길이 험해서 그리로 찾아 드는 사람이 적다". 
좁은 문이 오히려 경쟁률이 낮다는 것이다.
세속의 좁은 문과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좁은 문은 이렇게 다르다.
혹시 경쟁 사회에 살아오는 우리도 이렇게 세속적인 의미로 "좁은 문"을 이해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험한 길을 지나야 하고 허리를 숙여 겸손한 자세로 들어가야 한다.
죽어라고 경쟁하는 자세로서는 결코 통과할 수 없는 곳이 좁은 문이다.
오히려 그렇게 하다가는 몸이 끼어 오도 가도 못하는 우스꽝스런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무엇을 우리가 목적으로 하며 사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길과 통과하게 될 문도 달라질 것이다.

죽음이 아닌 생명을 추구하며 나아가기로 하자.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 앞에 피조물로서의 자세를 갖추고 겸손하게 살도록 하자.


허리를 굽히고 베틀레헴 성당의 좁은 문을 통해 들어가서

주님 탄생 경당에서 친구(親口)할 때의 감동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