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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모성보다 더 강한

by 大建 2015. 3. 18.

사순 제4 주간 수요일(이사 49,8-15)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 딸 앨리스 공주가 있었다. 그 공주에게는 네 살된 어린 아들이 있었다.
불행하게도 그 어린 아들이 당시에는 불치의 병이요 위험한 전염병으로 알려진 블랙 디프테리아라는 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되었다. 공주의 주치의는 공주에게 절대로 아들 곁에 가지 말라고 경고하였다.
거기다 앨리스 공주의 체질은 유난히도 약했다고 한다.
앨리스 공주는 할 수 없이 아들이 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넓은 방 한구석에 서서 멀찌감치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아들을 간호하던 간호사가 침대 곁에 갔을 때 멀리 서 있는 엄마를 보며 간호사에게 어린 아들은 말했다.
“왜 우리 엄마는 더이상 나에게 가까이 와서 입맞춰 주지 않나요?”
이 나즈막한 목소리를 구석에 서서 듣던 엄마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는 듯이 단숨에 달려가
“미안해, 엄마는 너를 진정으로 사랑한단다”라고 말하면서 어린 아들을 꼭 껴안았다.
의사의 경고도 아랑곳 없이 그녀는 깊은 모성애를 보여주었던 것이다.
결국 엄마 앨리스는 그 위험한 전염병에 걸려 수주가 지난 어느 날 아들과 함께 나란히 땅에 묻히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어머니는‘죽음의 키스’를 통하여 어머니만이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을 보이고 죽은 것이다.

정상적인 어머니라면 이처럼 자식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자식보다는 자신을 더 위하면서 사는 여인들도 있는 모양이다.
불가피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지게 아플 것이다.

"어미는 혹시 잊을지 몰라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아니 하리라"는 이사야서의 오늘 독서 말씀은
이렇게 일반적으로 비할 데 없는 어머니들의 사랑보다 더 한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보여 준다.
사랑도 이기적으로 하는 요즈음의 세태에 하느님의 이러한 사랑이 이해될 수 있을까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랑을 맛보면서 살고 있다.
문제는 내가 마음을 열지 않기 때문에,
"우리 엄마 맞아?" 하는 소리가 나오고,
"하느님은 과연 나를 사랑하시는가?"하는 회의를 품게되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입장에서,
내 뜻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구하면서 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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