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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by 大建 2010. 1. 10.

주님의 세례 축일(루까 1,15-16. 21-22)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리 죄를 씻어주시기 위하여 죄없이 세례받으신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교회의 전례력으로 우리는 오늘 성탄시기를 마감하고 내일부터 연중시기를 시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중시기에는 주님의 공생활 이후의 모든 신비를 함께 묵상하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에서 정말 알아듣기 힘든 내용을 들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분이, 죄도 없으신 분이 세례를 받는다는 것이 그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에 의하여 요르단 강에서 수많은 사람이 가슴을 치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세례를 받으러 몰려올 때, 예수님께서 그 군중 속에 끼여 여느 사람과 똑같이 세례를 받으시고자 오십니다.

비록 죄없으신 메시아께서 죄인들과 함께 세례를 받으시기는 하였지만 그분이 세례를 받으심으로 해서 그분이 누구이신지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그분이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 오셨으며,
그 때 하늘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하는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마르 1,10-11 참조).
하늘에서 들려온 이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었겠습니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말씀은 시편 2,7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님이
유대인들을 위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보내어질 왕 즉, 메시아이시라는 뜻입니다. 

세례 안에서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의 아들되심을 분명하게 확인하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사랑으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당신에게 맡겨진 일들을 수행하시는 데에,
즉 “소경들의 눈을 열어 주고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 주고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는”(이사 42, 7)
데에
당신의 온 삶을 바치셨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전에는 접해보지 못했던 하느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서 분명하게 전해졌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렇습니다.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결정적인 새로움이 도래했음을 알리기 위해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내려오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인간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고
이 인간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자기 창조주의 계획에 온전히 넘겨 드렸습니다.
온전히 투명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인간의 생명 자체인 새로운 성전,

“진리와 영(靈) 안에서 바치는” 새로운 예배가 도래한 것입니다(마르 14,63: 요한 2,21-22).

한편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의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체험은 세례받은 이들의 체험이 되기도 합니다.
“만일 당신에게 진정한 신심이 있다면, 당신에게도 성령이 내려오시고 ‘이는 내 아들’이라는 성부의 목소리가 들릴 것입니다”[각주:1].
또한 세례받는 이들이 그리스도를 입게된다고 할 때 구세주의 특성들이 그리스도인의 형상에 각인됨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를 받았습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같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그분 자신의 가족, 족보의 구성원이 되었고 당신은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을 지녔습니다”[각주:2].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제부터는 우리도 그리스도께서 공생활 중 사셨던 모습으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의 자녀로서, 그분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를 행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그리스도인 생활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상한 갈대와 같은 사람, 꺼져가는 등불과 같은 사람들을 다시 일으켜 주고,
사람들 사이에 정의를 세우고,
마음으로 눈먼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자기의 죄악과 세상 원욕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현세의 어두움 속에 있는 이에게 삶의 빛을 주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살라고 즉 “만국의 빛”이 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오늘도 우리 각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1. 예루살렘의 성 치릴로, Cat. III, n.12: PG 33,445. [본문으로]
  2. 성 요한 금구, Com. in Gal., c.3, n.5: PG 61,656.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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