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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프사모 성지순례 9 - 똘레도(Toledo)

by 大建 201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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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똘레도 이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오늘 저녁 마드리드까지 가야한다.
아빌라에서 두 시간 여를 달려 우리는 똘레도에 도착했다.
거기서 똘레도 - 마드리드의 여정에 함께 동반할 한 가족을 만나게 된다.
테오도로, 세실리아, 레오 가족이다.

사실 테오도로와 세실리아는 내가 혼인을 주례한 부부이다.
세실리아는 프사모 초기 멤버로서 흔쾌히 혼인 주례를 해주기로 했는데
나중에서야 알고 보니 신랑 테오도로가 나의 고등학교 후배였다.
그래서 나와는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는데
몇 년전부터 네델란드에 직장을 얻은 남편과 함께 가족 전부가 현재 그곳에서 살고 있다.
이번에 프사모가 스페인 성지 순례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테오도로가 휴가를 내어
짧은 일정이지만 프사모와 동행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똘레도 시내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오래간만의 회포도 풀고 맛나게 식사를 한 다음
똘레도 관광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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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레도(Toledo)

스페인 중남부 카스티야라만차 지방 똘레도 주의 주도.
마드리드에서 남남서쪽으로 67㎞ 떨어진 지점에 있다. 타호 강으로 돌출하여 삼면이 강물로 둘러싸인 암석질의 갑에 있다. BC 193년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풀비우스 노빌리오르에게 정복된 후 똘레툼이라는 이름으로 로마의 주요식민지이자 카르펜티아의 중심지가 되었다. 6세기에는 서고트 왕국의 왕궁 소재 도시였다. 이곳에서 유명한 공의회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는데, 특히 제3차 똘레도 공의회(589)는 레카레드 왕이 그리스도교로의 개종을 선언한 중요한 공의회였다. 무어인들의 점령기간(712~1085)에는 한 중요한 모자라베 공동체(아랍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도들의 집단)의 본거지로서 툴라이툴라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1085년 알폰소 6세에게 점령당한 후 카스티야 왕국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사회적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스도교·아랍·유대 문화가 하나로 융합된 도시인데 그 대표적인 예로 13세기에 현명왕 알폰소 10세에 의해 설립된 통역사학교인 Escuela de Traductores를 들 수 있다. 1560년 펠리페 2세가 마드리드를 수도로 선택한 이후 시의 중요성이 쇠퇴했다.
톨레도는 스페인 문화를 가장 잘 대변하는 곳으로 간주되어 시 전역이 국립기념지로 선포되었다. 도시가 암석지대에 건립되었기 때문에 쏘코도베르(Zocodover)를 중심으로 펼쳐진 시가지가 좁고 구불구불하며 경사가 가파르고 지면이 울퉁불퉁한 것이 특징이다. 타호 강에는 2개의 다리가 놓여 있다. 북동쪽에 있는 알칸타라(Alcantara) 다리가, 북서쪽에는 13세기에 세워진 산마르틴(San Martín) 다리가 있다. 성벽은 대부분 무어인이나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해 축조되었지만 서고트족이 축조한 것도 있다.
이슬람교의 영향을 받은 중요한 건축물로는 무데하르 양식(스페인과 이슬람의 혼합 건축양식)의 유대교 회당들인 산타마리아라블랑카 회당(Santa María la Blanca Sinagoga, 12세기)와, 무데하르 양식의 교회인 산토토메(Santo Tome) 교회가 있다. 산토토메 교회에는 훌륭한 탑과 엘 그레코가 그린 [오르가Tm 백작의 매장(El Entierro de Conde de Orgaz)]가 소장되어 있다.
톨레도에서 생산되는 강철과 특히 검(劍)은 오랜 시대에 걸쳐 명성을 얻어왔는데, 이미 BC 1세기 그라티우스 '팔리스쿠스'의 키네제티카에 언급되어 있다. 톨레도에서는 중요한 무기공장과 다마세노(damasceno) 조각용 금속판(무데하르의 전통양식으로 장식된 금속세공품)을 생산하고 있다. 특산품으로 아몬드와 설탕으로 만드는 크리스마스용 사탕과자인 마싸판이 있다. 인구 68,382(2001).
역시 구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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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곳보다 먼저 주교좌 성당을 찾았다.
똘레도는 지금도 마드리드를 제치고 에스빠냐 가톨릭 교회의 수좌교구(Obispado Primado)이다.

수좌교구의 대성당(Catedral)답게 내외부가 화려하고 또 여러 가지 시선을 끄는 것들도 많지만
주일이라 그런지 다른 대성당들과 달리 내부에서의 플래쉬없는 사진 촬영조차 금하고 있었기에
안타깝게도 한 장도 찍지 못하고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똘레도 대성당에는 아주 재미있는 모습의 성모자상이 하나 있다.
아기 예수가 손바닥으로 성모의 턱을 만지고, 성모는 빙그레 웃는 모습을 한
Virgen Blanca(하얀 성모)성모자상이다.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oratio2004/GrTE/150?docid=nGEC|GrTE|150|20090903174226&q=%BF%C0%B8%A3%B0%A1%BD%BA%20%B9%E9%C0%DB%C0%C7%20%B8%C5%C0%E5&srchid=CCBnGEC|GrTE|150|20090903174226

전 세계 다른 어떤 곳에서도 이러한 성모자상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한다.

한편 제의방에는 불세출의 그리이스 출신 화가 엘 그레꼬(El Greco)가 그린
12 사도들의 모습이 진열되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베드로의 눈물(Lagrima de Pedro)을 눈여겨 보기 바란다.


베드로 사도가 흘리는 참회의 눈물이 비칠 듯 말 듯 하면서 그가 짓는 회한의 표정을 (내가 보기에)

기가 막히게 표현해 놓은 작품이다.
나는 똘레도에 갈 때마다 이 그림 앞에서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고는 하였다.
엘 그레꼬의 작품들은 산토 토메 교회 근처의 생가 박물관에 더 많이 소장되어 있으나
우리는 시간 관계상 그곳을 들르지 못하였다.

대성당을 둘러본 다음 우리는 산토 토메 교회로 향하였다.
1586년에 완성된 엘 그레코(El Greco)의 '오르가쓰 백작의 매장(El Entierro de Conde de Orgaz)'이라는 그림이 있어 유명한 산토 토메 교회(Igesia de Santo Tome)는 세계의 관광객들이 그림을 보기 위해 많이 찾는 곳이다. 이 그림은 상하 2단으로 나뉘어 있으며 상단부는 천상계를 하단부는 지상계를 상징하고 있다. 중앙에는 천사가 팔을 감싸고 있는 그림이 있는데 이는 오르가스 백작의 혼을 표현한 것이다.


사실 나는 산토 토메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똘레도 방문은 이번이 9번째인 셈이다.
유학시절 마드리드에서 가장 근교에 있고 빼어놓을 수 없는 관광지인 이곳을
손님이 올 때마다 방문하였기 때문이다.

참새가 방앗간 그냥 지나가지 못한다고 했던가.
똘레도에 와서 금세공품 구경도 못하고 가면 섭섭하다는 의견들에 따라 한 판매장을 찾아
쇼핑을 한 후 우리는 버스에 탑승하였다.

산 마르틴 다리

01

똘레도 전경을 볼 수 있는 언덕에 올라가 사진 촬영을 한 후, 우리는 다음 행선지인 마드리드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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