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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프사모 성지순례 10 - 마드리드(Madrid)

by 大建 201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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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똘레도에서 버스를 승차하여 저녁 식사가 예약되어 있는 마드리드의 한 식당으로 향하였다.
약 10년 만에 다시 방문하는 마드리드다.
에스빠냐의 수도인 마드리드에 다가갈수록 많이 변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풍광이 자주 눈에 들어온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했으니까...
그러나 역시 마드리드는 내 인생의 거의 4년간을보낸 정겨운 도시, 제2의 고향과 같은 따스한 정으로 나를 맞아준다.
¡Hola, Madr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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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마드리드는 400여년간 에스빠냐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로 유럽의 타국가의 수도 중 가장 높은 고지대인 해발 646m에 자리하고 있는 고원도시이다.
1561년 FelipeⅡ가 수도를 똘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천도한 이래 급속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현재까지 남아있는 구시가는 주로 17-18세기에 건설된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특히 18세기후반 CarlosⅢ때 많은 건물(프라도 박물관, 왕궁 등) 및 도로(Paseo del Prado) 등을 건설하게 되어 수도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마드리드는 유럽 문명과 오리엔트적 요소가 잘 결합되어 있어 그 매력을 더하고 있으며, 고색창연한 건축물과 미술관, 박물관, 유적들이 많이 남아 있고, 거리에는 옛날 모습이 곳곳에 남아 있다. 그러나 신시가지에 들어서면 현대적인 빌딩거리가 펼쳐지며 교외에는 공장과 고층건물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주변으로 팽창해 나가는 대도시의 활기를 느낄 수 있다.
마드리드의 기후는 맑은 날이 많으며, 고원도시인 까닭으로 한서의 차가 극심한 대륙성 기후를 나타낸다. 여름에는 무척 더우나 공기가 건조하여 그늘에 들어가면 시원하고 겨울에도 바람이 없는 날이면 큰 추위는 느끼지 않는다.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초여름이나 초가을이 가장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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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에 있는 한식당에서 모처럼 정겨운 한식을 먹는다. 모두들 즐거워 하는 모습이다.
여기서 만나기로 한 헬레나 수녀를 대하고 정겨운 회포를 풀게 된다.
헬레나 수녀는 내가 소임하고 있는 목동본당 출신으로
수녀원 입회 이전 재속프란치스꼬회 청년부 지도 시절부터 잘 알고 지내던 사이이다.
현재 에스빠냐에서 소임을 준비하기 위하여 까스떼야노(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으며,
내가 에스빠냐를 방문한다는 소식에 그 어머니는 자그마한 보따리를 준비해주셨다.
세실리아 가족과 헬레나까지 포함해서 이제 우리 일행은 27명이 되었다.
식사 후 세실리아 가족과 헬레나 수녀는
내일 미사가 예정되어 있는 주교좌 성당에서 만나기로 하고 떠나고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인 Arturo Norte Hotel(★★★★)에 가서 편안한 휴식의 시간을 취하게 된다.

다음 날(2/1, 월) 곤한 잠에서 깨어 신변 정리를 하고 테이블 위의 호텔 안내문을 보니
주소가 Canto Blanco로 되어 있었다.
Canto Blanco는 마드리드의 북쪽 외곽지역으로 내가 공부하던 꼬밀랴스 대학(Universidad Pontlfícia Comillas de Madrid)이 있는 곳이다.
창문을 열고 두리번거리고, 호텔문밖으로 나가 둘러보아도 보이지 않는다.
Canto Blanco가 이렇게 상업지구로 변하다니... 꼬밀랴스는 어디쯤 있는 것일까...? 
모교를 근처에 두고도 가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미사가 예약되어 있는 주교좌 성당으로 향한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다시 한번 안타가움을 가슴에 담아야 했다.
버스가 바로 내가 살던 San Fermín de los Navarros 본당을 지나친다.
순례단원들은 잠시 들러가라고 하지만 단체 여행에 지장을 주고 싶지 않아 못들은 척 한다.
사실 들어가서 몇 안 남았을 그때 같이 살던 형제들과 반가운 인사라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왜 없었으랴만 마음으로만 안부를 전한다.

왕궁 바로 옆에 있는 대성당에 도착하여
중앙 제대 바로 옆에 있는 성체가 모셔져 있는 경당에서 우리는 미사를 봉헌하였다.
조금 늦었지만, 헬레나 수녀와 세실리아 가족도 함께 참예하였다.

주교좌 알무데나의 성모 대성당 전경


미사 후 바로 옆에 있는 왕궁이 월요일이라 개방하지 않기에
아쉬움을 남기며(사실 쁘라도(Prado) 박물관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Plaza Mayor(마요르광장)로 향한다.

012

마드리드의 마요르 광장은 규모면에서나 건축학적인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것으로 손꼽히고 있는 광장이다. 펠리페 2세가 수도의 중앙에다 이와 같은 광장을 만들라고 명하였으나 실제로 지어진 것은 그의 아들인 펠리페 3세가 재위에 있었던 때에나 가능하였다. 그리하여 1620년, 스페인의 다섯 성인을 기리는 시성식 행사를 이 곳에서 치름으로써 마요르 광장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공개되었다.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까지 이 광장은 각종 공연장, 마녀재판과 사형 집행장, 왕가의 결혼행사장, 투우장 등 다양하고 이채로운 행사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이에 광장 주변에 위치한 가옥의 발코니들은 무슨 행사가 있을 때마다 왕가를 비롯한 귀족들이 사용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고 한다. 1970년대부터 마요르 광장은 차량 통제를 실시, 오늘날까지 이 곳은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활기로운 광장으로서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다. 일요일 오전이면 우표 등을 판매하는 벼룩시장이 서기도 한다.

광장의 중앙에는 이탈리안 조각가 Giovanni de Bologna에 의해 세워진 펠리페 3세의 기마상이 위치하고 있다.

마요르 광장을 둘러보고
우리는 근처에 예약이 되어 있는 식당으로 가서 드디어 빠엘랴를 먹어보게 된다.
빠엘랴는 에스빠냐의 전통 음식 중의 하나로 쌀과 고기나 생선을 가지고 만든 요리로서
아무래도 우리에게는 친숙하게 느껴지는 음식이다.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한 후 우리는 Plaza de España(에스빠냐 광장)으로 향하였다.


마드리드를 구시가와 신시가로 나누는 기준로인 그란비야(대로)의 끝쪽에 위치한 광장으로 1916년, "돈 키호테"를 쓴 에스빠냐의 대표적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사후 3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광장의 중앙에는 말을 타고 있는 돈키호테와 나귀 위에 올라탄 산초 판사의 상이 세워져 있고 마치 자신이 만든 소설의 주인공들을 내려보기라도 하는 듯 그 윗부분에는 세르반테스의 상이 있다.

광장 후면으로 보이는 건축물은 1950년대에 Otamendi 형제에 의해 설계된 Edificio Espana와 Torre de Madrid로, 총 27층으로 이루어진 이 곳은 현재 아파트 및 호텔로 이용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단체 사진을 한 장 찍고,
세실리아 가족 그리고 헬레나 수녀와 짧은 동행에 대한 아쉬움과 정을 나누는 인사를 남기고
마드리드를 떠나 다음 행선지인 부르고스로 향하게 된다.

에스빠냐의 수도를 이렇게 간단히 밖에 볼 수 없는 순례단원이나
개인적인 정을 가슴에 묻고 떠나야 하는 본인이나
이 여행이 관광이 아닌 성지순례임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었기에
미련없이 버스에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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