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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편견을 버리자

by 大建 2010. 7. 30.

연중 제17 주간 금요일(마테 13,54-58)


한 독립 운동가가 죽어서 하느님 앞에 섰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그 동안의 업적이 뛰어나므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줄테니 말해 보거라." 그래서 그 독립 운동가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 다섯 명을 우리나라에서 태어나게 해 달라고 했다. 그리하여 에디슨, 갈릴레오 갈릴레이, 뉴턴, 아인슈타인, 퀴리부인이 우리나라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그 독립 운동가가 그 다섯 명의 소식이 궁금해 하늘에서 살펴보았더니 모두 실업자로 지내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실업자가 된 이유인즉슨 이랬다. 에디슨은 많은 발명의 업적을 남겼지만 초등학교 중퇴라는 학력이 취직할 수 있는 자격조건에 맞지 않았고, 아인슈타인은 수학은 뛰어나게 잘 했지만 그 밖의 과목이 낙제였고, 뉴턴은 대학에서 뉴턴의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교수가 아무도 없어 졸업을 할 수가 없었고, 갈릴레이는 대학가의 모순과 부조리를 꼬집다가 대학에서 문제 학생으로 낙인이 찍혀 사회생활을 할 수가 없었다.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기까지 한 퀴리 부인은, 글쎄, 얼굴이 못 생겨서 면접에서 미끄러졌단다. 이처럼 편견은 한쪽 면만 보기 때문에 사람을 제대로 판단 못한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은총의 말씀과 기적의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대하지만,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편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본다. 그러니 예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곡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답답한 마음에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사람들의 마음에는 어린 시절의 예수님, 동네 꼬마였던 예수님, 돌봄이 필요했던 예수님, 그리고 자신들의 일을 보조했던 예수님만이 있었나보다. 사람들은 그러한 생각에 사로잡혀서 성장한 예수님, 가르침을 주시는 예수님, 그리고 기적을 일으키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제로 그들에게는 어떠한 기적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그렇게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사람은 세상 어디에서도 하느님을 만나지 못한다. 내 안에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보고 만나고 깨닫고 체험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 안에도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볼 수가 있는 것인데, 우리 안에 계시는 사랑의 하느님을 우리가 못 보는 이유는 우리 안에 육의 열매인 분노, 시기, 질투(갈라디아서 5,19)등으로 인한 편견의 어둠이 있기 때문이며,  말씀과 성사의 은총으로 우리가 이러한 어둠을 하나 둘 버리면 내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사랑으로 보게 될 것이고 예수님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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