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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두려움과 체면을 넘어서

by 大建 2011. 2. 1.
연중 제4 주간 화요일(마르코 . 5,21-43)


오늘 복음은 우리가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데 걸림돌이 되는 두 가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먼저, 그 하나는 두려움이다. 하느님께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오히려 그분께 나아가는 믿음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는 하느님을 심판주,  벌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결과이다. 그러나 계시에 나타나는 하느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러한 두려움의 대상, 우리를 감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처벌하는 그런 독재자, 폭군이 아니시다.
오히려 "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요한 3,16) 분이시다.  하느님의 강생은 인간의 두려움을 없이 하고 당신과 사랑의 관계에 들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하혈병 앓는 여인도 자기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댄 것을 그분이 알아채시자 "두려워 떨었다"고 한다. 부정한 사람이 정하신 분에게 손을 대었으니 율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다가오기는 하였지만 그분과의 관계맺기는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시며 두려움을 넘어 그 여인을 일으켜 주신다.
그리고,  자기 딸을 고쳐주시기를 청하는 회당장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36) 하시며 당신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 살아계신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시며 몸소 그의 집으로 향하신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두려움을 없애주시며 친히 다가오셔서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해주시는 분이시다.

두번째로, 우리의 믿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체면이 아닌가 싶다.
당시의 회당장은 오늘날 마을 유지 정도 혹은 그 이상의 지위를 누리는 사람이었다. 그러한 그가 "떠돌이 예언자"에 불과한 예수님게 다가와 딸을 위하여 도와주실 것을 청한다. 체면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택한 것이다.
오늘날 사회적인 지위를 누리는 많은 이들, 특히 소위 지성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종교와는 일정한 선을 그으려고 하는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종교는 나약한 심성을 지닌 사람들이나 무지한 사람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견 때문에, 그리고 그러한 것 때문에 자기 체면을 살리기 위해서 짐짓 강한 척, 똑똑한 척 하는 것이고, 이는 곧바로 교만의 죄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이 절대자이시요,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다정하게 다가오시는 임마누엘이심을 올바로 인식하는 사람은 오히려 겸손히 나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그분 앞에 설 수 있다. 인간을 위해 겸손해지신 분께서 겸손해진 인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겸손은 우리를 더욱 성장시킨다.

두려움을 떨치고, 체면을 벗어버리자. 그분 친히 우리에게 "일어나라!"(41) 하시며 다가오신다.

                                                                                                                           (17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