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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주님께서 하고자 하시면...

by 大建 2013. 1. 11.

주님 공현 후 금요일(루까 5,12-16)

 

"아주 큰 농원에서 나란히 자라고 있는 세 그루의 나무가 있었다.

이들은 어린 묘목답게 당찬 포부를 가지고 있었고, 장차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었을 때의 자신들의 계획에 관하여 말했다.

첫째 묘목은 큰 저택의 건축 재료로 쓰여 목재로서의 아름다운 무늬를 사람들에게 보이면서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싶다고 했다.
둘째 묘묙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람선의 가장 높은 돛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그러면 어떤 항구에 가더라도 모든 사람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셋째 묘묙은 야외극장의 건축 재료로 쓰이고 싶다고 했다.
그 이유는 야외극장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에 가장 잘 보일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하는 바에 의하면 이 세 그루의 묘목은 다음과 같이 되었다고 한다.

첫째 나무는 성장한 다음 일부분이 잘려서 외양간의 먹이통이 되었고,
둘째 나무는 잘려져서 가난한 어부의 투박한 배가 되어 호숫가에 오래 동안 떠 있었고,
셋째 나무 역시 잘려 나가 십자가로 만들어져서 어떤 사람의 십자가형에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 세 묘목은 자신들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욕심이 그리 잘못된 욕심이 아니라는데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꿈을 이루어 주시지 않은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 묘목들은 자신의 꿈과는 다른 모습으로 빛나는 모습이 되었다.

첫째 묘목은 마구간의 구유가 되어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그분을 모셨고,
둘째 묘목은 갈릴래아 호숫가의 투박한 배가 되어 예수님께서 그 배에 앉아 사람들을 가르칠 수가 있었고,
셋째 묘목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되어 그분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하는 영광을 차지할 수 있었다.

우리는 흔히 하느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하느님께서 내가 바라는 것을 꼭 해주셔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내가 바라기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바라시기 때문에 해주시는 것이 옳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오늘 나병환자가 드리는 청원은 우리 기도의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 하실 수 있습니다”.

무조건 내가 바라는 것을 해달라고 떼를 쓸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청해야 한다. 그분이 원하셔서 하실 수 있도록 청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겸손의 기도가 주님께서 바라시는 기도이며, 이러한 겸손 앞에서 주님의 마음은 자연스레 움직이게 되어 “내가 하고자 하니 ...게 되어라”하고 응답을 주실 것이다.

주님께서 겟세마니 동산에서 하신 기도를 깊이 새 기고 우리도 그렇게 기도하기로 하자. “아버지, 하실 수만 있으시면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테 26,39).

                                                                                                                                                 (3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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