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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2

by 大建 2013.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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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서 새벽 4시에 기상하였다. 오늘도 강행군이 될 것 같다.

다른 곳에서 미사를 할만  한 곳이 없다고 하여 길을 나서기 전 호텔에서 미사를 하였다.  미사 중에 근처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아침기도에 신자들을 초대하는 "아잔" 소리가 구성지게 들려온다. 회교 국가에서 성당도 아닌 호텔에서 아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미사를 봉헌하자니 감회가 남달랐다.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이야기가 복음의 주제다. "우리 각자의 광야를 찾아 나서 보자! 광야로 나갈 때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요지의 강론을 하였다.



오늘의 첫번째 행선지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이다.

우리는 버스로 안티오키아에 가는 내내 황소산맥에 쌓여있는 설경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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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스 산맥(황소산맥, Toros Daglari, Taurus Mountains)은 터키 남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산맥이다. 동쪽 끝은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고 믿어지는 아라랏 산이다.
바오로 사도는 저 산맥을 두 세번 넘었을 것이다. 그 시대에 저런 산을 한번도 아니고 두 세번을 넘어 다녔다니 그 고초가 어떠했을지 짐작도 안 된다.

황소산맥 옆으로 아주 맑은 에이르디르 호수를 지나간다.
얄바츠 라는 곳 근처의 식당에서  소고기볶음밥 비슷한 음식으로 점심 식사를 한 후.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순례를 한다.


호수의 동북쪽에 위치한 주민 2만5천 명 정도의 소도시 얄바츠(Yalvac) 동쪽 1킬로미터 지점에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폐허가 있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를 창시한 셀레우코스 니카토르가 기원전 301년 이 도시를 세우고 아버지 안티오코스의 이름을 따서 안티오케이아라고 명명했다. 기원전 25년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곳에 로마군을 주둔시키고 로마인의 거주지로 삼았다.

기원전 39~36년에는 갈라티아의 임금 아민타스(Amintas)의 수중에 들어갔으나 그가 죽은 기원전 25년 로마제국으로 편입되었다. 라틴어로 된 비문들을 해독한 결과 안티오키아는 약 200년간 로마의 식민지로 있었다. 따라서 이 도시는 로마의 속주 피시디아의 도시들 가운데 가장 로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공식 언어는 라틴어였으나 민중은 그리스어를 사용했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지역의 땅이 기름지고 생활 환경이 좋았으므로 토착민과 이주자들이 섞여 살았다. 학자들은 당시 안티오키아의 인구가 3, 4만 명 정도였고 특히 3세기경에 번성기를 누렸다고 보고 있다. 로마의 식민지였던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는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와 다른 곳이다.

바오로는 제1차 선교여행 때(45-48년경) 페르게에서 험준한 토로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에서 전도했다. 그는 안티오키아에서 두 안식일에 걸쳐 먼저 유다인들에게 전도했으나 배척당하고 이방인들에게로 옮겨갔다(사도 13,13-52). 바오로가 제2, 3차 선교여행 때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들렀다는 기록은 없으나 아마도 들렀으리라고 추정된다(사도 15,41-16.1;18,23 참조).

로마 시대 유적으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은 다음에 황제를 기려 세운 아우구스투스 신전, 도시 북쪽으로 10여 킬로미터 떨어진 ‘수처크터’ 샘에서 물을 끌어온 상수도교가 돋보인다. 비잔틴 시대에 지은 바오로 대성당 초석도 남아 있다. 큰 성당을 짓기 전에는 작은 성당이 있었는데, 작은 성당 바닥에서 이곳의 주교 옵티모스(357~381)의 이름을 새긴 모자이크 두 개가 발견되었다. 이 작은 성당은 본디 유다교 회당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터키에서 유다교 회당 터에 성당을 세운 사례는 여기뿐이다. 아마도 이 회당에서 사도 바오로가 두 안식일에 걸쳐 유다인들에게 전도했을 것이다(관련 성서구절: 사도 13,13-52).

이곳 유적은 모두 최근에 미시간대학에 의해 발굴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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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으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순례단을 축복한 후 우리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여,

라오디케이아를 필두로 묵시록의 소아시아 7교회 유적 순례를 시작하였다.

라오디케이아는 시리아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2세(기원전 261-252년)가 이 지역의 전략적 요소 때문에 만든 도시로 왕비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케이아라고 명명했다.

가까운 히에라폴리스(파묵깔레)의 온천수로 만든 안약 원료의 생산으로도 유명했다. 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한 주민들은 부유했고, 따라서 신앙에는 미지근해질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이 교회를 호되게 꾸짖었다(묵시 3,14-22).


라오디케이아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라오디케이아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아멘 그 자체이고 성실하고 참된 증인이며 하느님 창조의 근원인 이가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면 좋으련만!

네가 이렇게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입에서 뱉어 버리겠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는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열성을 다하고 회개하여라.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 사람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승리하는 사람은, 내가 승리한 뒤에 내 아버지의 어좌에 그분과 함께 앉은 것처럼, 내 어좌에 나와 함께 앉게 해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묵시 3,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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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께 문을 열어드리고 뜨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기도를 바친 후 우리는 발걸음을 파묵깔레로 옮겼다.


파묵깔레(Pamukkale)는 터키 남서부 데니즐리에 위치한 석회붕을 말한다. 파묵칼레의 뜻은 터키어로 파묵이 목화를 뜻하고 깔레는 성을 뜻하므로 목화 성이란 뜻이다.



파묵깔레의 언덕 위에는 고대도시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이 있다.

히에라폴리스(Ἱεράπολις : "성스러운 도시")는 기원전 190년에 시작된 도시의 유적이다. 원형극장은 1만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이다.

이 밖에 터키식 증기 목욕탕이나 돌을 쌓아만든 벽 등을 여기저기서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 발굴된 출토품들은 히에라폴리스 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다.

히에라폴리스는 로마시대부터 온천으로 유명한 휴양도시였다. 파묵칼레에 흐르는 온천수에 장수의 염원을 담은 고대인들 그리고 병자들이 치료를 위해 묵었던 곳이라 알려져 있다. 묵시록 3장의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표현은 바로 이곳의 온천수의 특징을 나타낸다고 한다.
한참 번성할 시기에는 10만에 이르는 인구가 살았다고 전해진다. 히에라폴리스 주 유적 근교에 옛로마인들의 무덤터가 있는데 그나마 보존이 잘된 곳이라 한다.



히에라폴리스의 유적을 둘러보다 보니 필립보의 순교지, 기념성당 유적이라는 팻말이 보이는데 그쪽으로 가려하지 않아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거기까지 다녀오자면 시간이 오래 걸려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기가 막혔다. 성지 순례인데... 더군다나 이곳에 오는 길에는 "면공장 견학이라"고 하면서 면제품 쇼핑센터에 들러오지 않았는가! 차라리 쇼핑을 생략하고 그리스도교 유적을 둘러보아야 했다! 속으로 분을 삭히기가 쉽지 않았지만, 여행하는 다른 이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하여, 수녀님께 나중에 여행 끝이나 후에 기회를 보아 여행사와 가이드에게 분명하게 말할 것을 당부하는 것으로 마무리지었다.



아무튼 우리는 히에라폴리스에서 내려와 파묵깔레의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둘러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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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묵칼레를 둘러보고 우리는 근처에 있는 Lycus River Hotel에 투숙하였다. 그런데 식사 때 또 불쾌한 일이 생겼다. 커피를 주문하였는데 7TL(터키리라)였다. 그런데 달러로는 6$를 달라는 것이엇다. 실제 환율은 3$면 충분한 것이었기에 따졌더니 3$만 달라고 한다. 그리고 식사중에 호텔 직원이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기에 짐작되는 바가 있어 따졌더니 오히려 화를 내면서 중단한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날 아침 식당 앞에는 어제 밤 찍은 사진을 걸어놓고 팔고 있었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이 호텔에서는 wifi가 I-phone에는 연결되지 않고 Android 폰에만 연결이 되었다. 이것이 이 호텔의 수준이었다.


아무튼 많은 순례단원들은 이 날 밤 불행중 다행으로 무료인 이 호텔의 온천욕을 즐긴 후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방에서 샤워 후 꿈나라로 향하였다.


말씀뽑기: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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