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진/여행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6

by 大建 2013. 3. 5.

이전 글 :   [여행] -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5



2/19

7시에 기상하여 여유있게 아침 식사를 위해 호텔 식당에 내려갔다. 그런데 식당에 고양이가 돌아다닌다! 헐... 이 나라 곳곳에서 유기견과 고양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다녔지만 호텔 그것도 식당에까지 고양이가 다니는 것은 지나치다 싶다.

기가 막혀서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길을 떠난다.

신경이 날카로워졌는지 버스 안에서 아침 기도가 끝나자마자 잔소리를 하였다. 부페식이라고 해서 남는 음식을 다시 가져다 놓은 실례를 범하지 말자. 식탐을 줄이면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호텔 로비에서 정숙하도록 하자. 한국에서는 층간 소음으로 살인까지 일어나지 않았는가! 한국 사람들의 외국 여행이 보다 많아져서 에티켓을 지키는 여행을 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첫 목적지는 이즈미르, 즉 스미르나이다. 이즈미르는 오늘날 터키에서 이스탄불, 앙카라에 이어 제3의 도시로 인구가 200만명이 넘는다.

스미르나는 BC3천년 쯤부터 발전한 에게해안의 항구도시로 그리스 최대 서사시를 남긴 호메로스(Homer)의 고향이라고 전해진다.  BC330년대 소아시아를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이 스미르나에 주둔한 일이 있었다. 근처 파거스 산에서 사냥을 다녀와 낮잠을 자던 알렉산더는 네메시스 여신으로부터 스미르나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하라는 이상한 꿈을 꾸었고 이을 실행에 옮겨 파거스산에는 거대한 성채를, 산 밑 해안에는 항구도시를 건설하였다. 이 성채는 지금도 잘 보존 되었다 한다.

스미르나는 기원전 27년 로마와 합병되면서 크게 번성하였다. 그러나 170년대 이 지역을 휩쓴 지진으로 스미르나는 크게 파괴되고 말았다. 이 때 스미르나의 웅변가 아리스테데우스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에게 도시 재건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철학자로도 유명한 황제는 명문에 감동되어 눈물을 흘렸다고. 이런 과정을 거쳐 복구되었지만 여러 차례 일어난 지진으로 과거 스미르나의 영광은 대부분 파괴되거나 땅 속에 묻히고 말았다.


스미르나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스미르나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죽었다가 살아난 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너의 환난과 궁핍을 안다. 그러나 너는 사실 부유하다. 또한 유다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에게서 중상을 받는 것도 나는 안다. 그러나 그들은 유다인이 아니라 사탄의 무리다.
네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이제 악마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묵시 2,8-11)

우리는 스미르나에 있는 폴리까르포 주교 기념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순교자 성 폴리카르뽀 주교

스미르나교회는 사도 요한의 수제자인 순교자 폴리카르뽀 주교가 사목한 곳으로 예수의 직제자들과 교부들 사이에 연결고리 역할을 한 중요한 교부이다. 폴리카르뽀는 예수님의 직제자들과 교부들 사이를 이어주는 중요한 교부(사도교부)이다. 그는 마르치온계 및 발렌티누스계 영지주의자들과 설전을 벌이며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를 지켰다. 155년경 로마에서 돌아온 폴리카르뽀 주교는 체포되어 화형으로 순교하였다. 폴리카르뽀 순교록에 의하면 총독이 주교에게 그리스도를 저주하면 풀어주겠다고 했을 때, "그분을 섬긴 지가 86년이오. 그분이 제게 잘못하신 일이 단 한 가지도 없었소. 그러니 저를 구원하신 제 임금님을 어떻게 저주할 수 있겠소"(순교록 9,3) 하며 155년 2월 23일 순교하였다.

교부 떼르뚤리아노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과연 세상 곳곳에서 그리스도교회는 (폴리카르뽀 성인을 포함한) 순교자의 피를 씨앗으로 하여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다.

묵시록 2,11 절의  "승리하는 사람은 두 번째 죽음의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는 말슴은 명백히 순교를 암시하고 있는 말씀으로 보인다. 그리고 뽈리까르뽀 성인은 그 말씀을 증거하였다. 우리도 매일 나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으로서 순교를 일상화하기로 하자!


스미르나를 떠나 우리는 묵시록의 4번째 편지의 수신처였던 티아디라로 향한다.


티아티라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티아티라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불꽃 같은 눈과 놋쇠 같은 발을 가진 이, 곧 하느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한 일을, 너의 사랑과 믿음과 봉사와 인내를 안다. 또 요즈음에는 처음보다 더 많은 일을 한다는 것도 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이제벨이라는 여자를 용인하고 있다. 그 여자는 예언자로 자처하면서, 내 종들을 잘못 가르치고 속여 불륜을 저지르게 하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한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지만, 그는 자기 불륜을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라, 내가 그를 병상에 던져 버리겠다. 그와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 함께 저지르는 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속으로 던져 버리겠다.
그리고 그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겠다. 그리하여 내가 사람의 속과 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것을 모든 교회가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가 한 일에 따라 각자에게 갚아 주겠다.
그러나 티아티라에 있는 너희 나머지 사람들, 곧 그러한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사탄의 깊은 비밀′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이들에게 나는 말한다. 너희에게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다만 내가 갈 때까지 너희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라.
승리하는 사람, 내 일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에게는 민족들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겠다.
그리하여 옹기그릇들을 바수듯이 그는 쇠 지팡이로 그들을 다스릴 것이다.
내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듯이 그 사람도 나에게서 받는 것이다. 나는 또 그에게 샛별을 주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묵시 2,18-29)


티아디라는 페르가몬과 사르디스를 잇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B.C 300년에 Seleucus 1세 의해서 세워진 도시이며 주후 1세기에는 산업과 상업의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사도행전 16 ,11-15 에 의하면 사도 바울의 제2차 전도여행 때 필립비에서 제일 먼저 입교한 사람이 바로 티아디라 출신으로 자색 옷감 장사 리디아라는 여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당시 티아디라는 자색 옷감 생산지로 유명했다. 이 비단은 꼭두서니 뿌리에서 추출한 물감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매우 고가품이어서 부호들이나 입을 수 있었다고 한다. 기원전 680년경의 리디아인들이 티아디라와 사르디스 일대에 리디아왕국을 건설하여 위세를 떨쳤으나 기원전 190년 페르가모 왕국이 이곳을 통치하기까지 여러 왕국들이 번갈아가며 이곳을 점령했다.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입교시킨 사람이 이곳 출신이고, 특히 옛 조상의 왕국 이름을 가진 여인이었다는 사실과, 물욕 때문에 전도한다는 오해를 받지 않으려고 교우들로부터 어떤 물질적 도움을 거부하던 바오로 일행이 리디아의 집에 머물렀다는 사실, 묵시록의 7교회에 보낸 편지 중 티아디라에 보낸 편지가 가장 길다는 것은, 많은 것을 묵상케 한다.

당시에는 직물상인들의 길드와 같은 조직이 있었고 그들은 그리스도교인이면서도 생계 때문에 길드 가입 조건인 이방신을 숭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녔다. 바로 이 때문에 엄한 꾸지람을 들은 것이었다. 즉 그들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테 6,24)는 주님의 말씀을 직접적으로 어긴 것이며, 이러한 신앙 자세는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 가운데서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바오로 6세, 베네딕도 16 세 등 많은 교황들께서는 "신앙과 삶의 괴리"를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서 두 주인을 섬기지 않고 오직 한분이신 하느님만을 순수한 마음으로 흠숭하며 살아갈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기도를 한 후 다음 목적지 페르가몬으로 향하였다.



페르가몬 신자들에게 보내는 말씀


“페르가몬 교회의 천사에게 써 보내라. ‘날카로운 쌍날칼을 가진 이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안다. 곧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 이름을 굳게 지키고 있다. 나의 충실한 증인 안티파스가 사탄이 사는 너희 고을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너에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에게는 발라암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자들이 있다. 발라암은 발락을 부추겨,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걸림돌을 놓아 그들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고 불륜을 저지르게 한 자다.
너에게는 또한 니콜라오스파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내가 곧 너에게 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칼로 그들과 싸우겠다.
귀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여러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숨겨진 만나를 주고 흰 돌도 주겠다. 그 돌에는 그것을 받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새겨져 있다.’”

01

기원전 323년 알렉산더 대왕 사망 후 리시마쿠스(Lysimachus) 장군이 차지한 페르가몬(또는 베르가모)은 페르가몬 왕국의 수도였다가, 기원전 133년 로마 공화국의 아시아 속주에 편입된 곳이다. 학문과 의학이 왕성하였다고 한다. 유메네스 도서관이 유명한데, 그것은 이집트에서 파피루스 수출을 금하자 양피지를 개발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페르가몬 도심에 사도 요한 성당의 유적이 있는데, 이 성당은 원래 2세기에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섬기기 위해 붉은 벽돌로 지은 신전이었으나 비잔틴 시대에 내벽을 쌓아 성당으로 개조한 것으로 그 규모가 상당히 크다. 오늘날에도 "붉은 성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시가지 서쪽 외곽에는 히포크라테스가 일했던  방대한 종합의료시설인 아스클레페이온(Asklepeion) 유적이 남아 있다. 이곳에서는 투약도 했지만 주로 정신요법과 물리요법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가지 북동쪽 산 정상에는 천연 요새인 아크로폴리스(Acropolis)가 자리하고 있다. 이곳에는 왕궁, 저수장, 유메네스 도서관, 노천 극장, 제우스 신전("사탄의 왕좌")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이렇게 하여 소아시아 7대 교회 순례를 모두 마치고, 우리는 Ayvaluc이라는 에게해의 휴양도시에 있는 CinarHotel에 투숙하였다.


말씀뽑기: 행복한 날에는 행복하게 지내라. 불행한 날에는, 이 또한 행복한 날처럼 하느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하여라.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인간은 알지 못한다. (코헬렛 7,14)




다음 글 :   [여행] -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7







'사진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8  (0) 2013.03.08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7  (0) 2013.03.06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5  (0) 2013.03.04
터키 그리스 성지 순례 4  (0) 2013.03.03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3  (0) 2013.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