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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8

by 大建 2013. 3.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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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에서 첫 밤을 지낸 우리는 여장을 다시 꾸려 이날의 첫째 목적지 고대도시 필리피 유적지로 향하였다.

필리피는 원래는 크레니데스라는 작은 도시였는데, BC 356년 알렉산더대왕의 아버지인 필리포스 2세가 점령한 뒤에 자신의 이름을 따 필리피라고 이름을 바꿨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이 도시가 중요하게 된 것은 로마제국의 Egnatia 가도가 이 도시를 지나가기 때문이고(이 길은 기원전146년에 로마인들이 무역과 군사용으로 만든 길로 현재 터키의 이스탄불인 콘스탄티노플에서부터 로마로 들어가는 근교의 아피아가도(Via Appia)까지 이어진다고 한다) , BC 42년 10월에 시저를 암살한 부루투스와 카시오스 대 이들을 응징하기 위한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사이의 결전이 이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부르투스파 패).


사도 바오로는 50-51 년경의 제 2차 전도여행 중에 여기에 도착했다(사도 16,12).
사도 바오로는 에그나치아 가도를 따라 그리스 북쪽 마케도니아 지방의 도시들을 순회하며 초대 교회들을 세워나갔다. 그리고 이 도시에서 선교를 하다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기도 하였지만(사도 16,16-40), 그가 뿌린 신앙의 씨앗은 시간이 지나면서 불이 붙은 듯 번져나가 큰 교회를 이루었다.


바오로 사도가 갇혔던 감옥터

군중도 합세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공격하자, 행정관들은 그 두 사람의 옷을 찢어 벗기고 매로 치라고 지시하였다.
그렇게 매질을 많이 하게 한 뒤 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단단히 지키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명령을 받은 간수는 그들을 가장 깊은 감방에 가두고 그들의 발에 차꼬를 채웠다.
자정 무렵에 바오로와 실라스는 하느님께 찬미가를 부르며 기도하고, 다른 수인들은 거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감옥의 기초가 뒤흔들렸다. 그리고 즉시 문들이 모두 열리고 사슬이 다 풀렸다.
잠에서 깨어난 간수는 감옥 문들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였다. 수인들이 달아났으려니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때에 바오로가 큰 소리로, “자신을 해치지 마시오. 우리가 다 여기에 있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간수가 횃불을 달라고 하여 안으로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면서 바오로와 실라스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 “두 분 선생님, 제가 구원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이 대답하였다.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그리고 간수와 그 집의 모든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사도 16,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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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필리피에는 한 때 바오로 사도에게 헌정된 성당이 4개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폐허가 되어 있을 뿐이다. 위 사진은 그 중의 하나의 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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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부귀 영화가 모두 헛된 것임을 보여주는 고대도시 필리피의 유적들.

원형극장

원형극장의 바닥에 소리가 울리도록 만들어 놓은 장치.


우리는 이곳을 떠나 근처 "성문밖 강가"(사도 16,13)에 있는 리디아 기념 경당으로 갔다. 이 경당은 이곳에서 리디아가 바오로 사도를 만나 세례를 받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곳이라고 하는데 리디아는 비교적 최근에 정교회에서 시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도시에서 며칠을 보냈는데,
안식일에는 유다인들의 기도처가 있다고 생각되는 성문 밖 강가로 나갔다. 그리고 거기에 앉아 그곳에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 말씀을 전하였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
(사도 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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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당옆 강(개울) 가에는 기념비와 야외제대(탁자)가 있었는데 우리는 이곳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미사를 하였다(그리스 정교회가 국교인 그리스를 순례하는 동안, 까발라를 제외하고는 우리는 성당 안에서 미사를 드리지 못했다.).

강론은 이 날 복음의 주제를 따라 기도에 관한 내용으로 하였으며, 자신과 공동체를 성숙시키는 사도적 기도 생활을 하자는 요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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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오로 일행은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로 향했기에"(사도 17,1) 우리도 그 길을 뒤밟아 가게 된다. 사실 우리는 암피폴리스는 그냥 점심식사를 하고 지나쳤을 뿐이고 아폴로니아에서 잠시 멈춰섰다.

비가 온다. 하지만 야외에서 미사를 할 때가 아니라 다행이다. 하긴 비를 맞고 미사를 했다면 더욱 좋은 추억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자그마한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는 이곳의 큰 바위 위에는 "바오로 사도가 여기서 설교했다"며 위의 성경 말씀이 새겨져 있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재미있는 사실은 영어와 희랍어로 적어 놓았는데 영어로는 17,1이라고, 희랍어로는 12,1이라고 다르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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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면서 설교하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보며 기도를 한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사도바오로 시대에 마케도니아의 수도였던 테살로니카로 향한다.

테살로니카는 오늘날에도 인구 150만명이 거주하는, 그리스에서 아테네 다음으로 큰 도시이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에서 3주간 ("세 안식일에 걸쳐"(사도 17,2)) 머물렀다고 한다.

바오로 일행은 암피폴리스와 아폴로니아를 거쳐 테살로니카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유다인들의 회당이 있었다.
바오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그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신 다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음을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감복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르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렇게 하였다.
그러자 유다인들이 시기하여 거리의 불량배들을 데려다가 군중을 선동하게 하여 그 도시를 혼란에 빠뜨렸다. 그러면서 야손의 집으로 몰려가 바오로 일행을 백성 앞으로 끌어내려고 그들을 찾았다.
그러나 그들을 찾아내지 못하자 야손과 몇몇 형제를 시 당국자들에게 끌고 가서 외쳐 댔다. “온 세상에 소란을 일으키던 자들이 여기까지 왔습니다.
야손이 그자들을 자기 집에 맞아들였습니다. 그자들은 모두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들을 어기고 있습니다.”
이렇게 그들은 군중과 또 이 말을 듣는 시 당국자들을 자극하였다.
그러나 시 당국자들은 야손과 나머지 사람들에게서 보석금을 받고 풀어 주었다.
(사도 17,1-9)

현재 테살로니카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교의 유적은 성드미트리오스 주교좌성당과 게오르기스성당 뿐이라는데, 우리는 로마군의 장교였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순교한 성 드미트리우스에게 헌정된 정교회 주교좌 성당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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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의 성당이라 그런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들어와서 기도하며 성인의 무덤을 순례하고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정교회 신자들의 특이한 모습은 중앙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콘에 경건히 친구(親口, 입맞춤)를 하는 것이었다.

우리도 잠시 자리를 잡고 앉아 기도를 한 후 조용히 빠져나와 숙소인 Antoniadis Hotel로 향하였다.

호텔에서 가이드의 배려로 특별히 Sweet Room에 투숙을 하게 되었다. Sweet Room이라고는 하지만 방이 조금 더 넓고 구획이 되어 있으며 고물TV가 한 대 더 있다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순례단원들에게는 무척이나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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