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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터키 그리스 성지순례 11

by 大建 2013.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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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드디어 그리스의 수도 아테네에 들어선다.

아테네(Αθήνα 아티나)는 그리스의 수도이며, 그 역사는 3,400년에 이른다.

고전기 아테네는 강력한 도시국가였다. 이 도시는 소크라테스, 페리클레스, 소포클레스 등 고대 세계의 쟁쟁한 위인들을 배출하였다. 또 기원전 5세기와 4세기경 아테네가 이룬 문화적ㆍ정치적 업적이 당시 유럽 대륙의 여러 지역에 영향을 끼쳐, 이 도시는 서구 문명의 요람이자 민주주의의 고향으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아테네에는 고전기의 유산이 아직 잘 남아있다. 수많은 고대 기념물과 예술 작품이 남아 있으며, 서양 초기 문명의 기념비적 건물인 아크로폴리스의 파르테논 신전도 있다. 그리고 로마 제국과 비잔티움 제국 시대의 다양한 유적이 있으며, 오스만 제국의 유적도 약간 남아있어 이 도시의 유구한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또 아테네에서 1896년 제1회 근대 올림픽 경기가 열렸으며, 108년 뒤에 다시 2004년 하계 올림픽을 개최하였다.


우리는 먼저 아크로폴리스로 향한다. 아크로폴리스는 아테네에서 해발 150m 높이에 꼭대기가 평평한 바위 언덕 위에 자리잡고 있으며, 면적은 약 3 헥타르이다.

아크로폴리스 입구에는 프로필라이아(Propylaea)라는 기념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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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라이아를 지나가면 유네스코 지정 세계 문화유산 제1 호인 파르테논 신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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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테논 신전(고대 그리스어: Παρθενών)은 고대 아테나이의 수호자로 여겨지던 아테나 여신에 봉헌된 신전이다. 기원전 5세기에 건설되었다.

기원전 480년에 페르시아의 침공으로 파괴되었다. 여타 그리스의 신전과 마찬가지로 파르테논 신전도 국가 금고로 쓰였으며, 특히 이곳은 한때 델로스 동맹의 금고로 쓰였다. 기원후 6세기에 파르테논 신전은 성모 마리아를 주보로 모시는 그리스도교 성당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오스만 제국에 정복당한 뒤에 1460년대 초에 모스크로 쓰였고 첨탑이 건설되었다. 1687년 9월 26일 파르테논 신전 안에 쌓아놓은 오스만 투르크의 화약 더미가 베네치아군의 포격으로 폭발하면서 신전과 그 조각물이 크게 훼손되었다.
건축학적으로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위대한 건축물이라고 가이드가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명하였지만 그 내용을 다 옮길 능력도 의도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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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 중의 하나라고도 알려져 있는 파르테논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건축물이 에렉티온 신전(Erechtheion)이다. 기원전 420-393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신전은 도리아식이 가미된 이오니아 양식을 띄고 있어 보기 드문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에렉티온 신전이 유명한 또 하나의 이유는 2m 남짓한 높이로 조각된 6명의 소녀상을 기둥으로 한 주랑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기둥의 일부는 대영박물관 등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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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테네 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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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길을 주지않는 새침한 아가씨. ^^


헤로데 아티쿠스의 음악당(Odeon of Herodes Atticus)


우리는 이어서 바오로 사도가 연설했던 아레오파고로 향한다.

아크로폴리스에서 내려다 본 아레오파고


아테네에서 실라와 디모테오를 기다리던 바오로는 ‘그 도시가 온통 우상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회당에서 히브리인들과 하느님을 믿는 이들과 토론을 벌이는데 시간을 보냈고, 날마다 아고라에 나가서 거기에 모인 사람들과 토론을 하였다. “에피쿠로스 학파와 스토아 학파의 몇몇 철학자들은 바오로와 토론을 해보고는 "‘이 떠버리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것인가?’라고 말하였다”(사도 17,16-18). 바오로는 전적으로 이교적인 대도시에서 아직도 손으로 더듬으며 애쓰는 선교사였다. 다시 말해 그는 정확한 출발점을 찾지 못했기 때문에 시장의 광장에서 우연하게라도 접촉하려고 애썼다.
 
자연히 광장에는 다양한 학파의 철학자들이 배회하고 있었고, 바오로보다 우월하다고 자만하는 그들은 그를 경멸하듯이 떠버리, 반문맹인, 허풍쟁이라고 하였으며, 예수와 부활에 대해 유창한 말로 장난스럽게 평하였다. 어쨌든 군중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으나, 시끄러운 광장이 정상적인 회개를 위한 적합한 장소가 못 된다는 사실을 그는 곧 깨달았다. “그들은 바오로를 아레오파고 법정으로 데리고 가서 이렇게 물었다. ‘당신이 가르치는 그 새로운 가르침이 어떤 것인지를 알려줄 수 없겠소? 우리가 듣기에 당신은 생소한 말을 하는데 어디 그 설명을 들어봅시다’”(사도 17,19-20).
 
아레오파고는 전쟁의 신 아레스(Ares)에게서 이름을 따온 암석 끝에 위치한 작은 공간이다. 아크로폴리스의 정면에 있는 평범한 바위에 지나지 않는다. 비유와 말마디로 시장 사람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철학자들은 바오로와 함께 바위로 올라갔다. 아레오파고 정상에서 보면 시장의 광장뿐 아니라 성전과 아크로폴리스의 장엄한 건물과 그 아래로 광대한 도시의 경탄할 만한 시야가 펼쳐진다.
 
바오로는 아레오파고 중앙에 우뚝 서서 연설을 시작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내가 보기에 여러분은 여러모로 강한 신앙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내가 아테네시를 돌아다니며 여러분이 예배하는 곳을 살펴보았더니 ‘알지 못한 신에게’라고 새겨진 제단까지 있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알지 못한 채 예배해 온 그분을 이제 여러분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사도 17,22-23). (http://www.mariasarang.net/saint_bbs/bbs_view.asp?index=bbs_saint&page=22&no=2583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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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파고 입구에는 사도행전 17장의 내용이 새겨진 철판이 부착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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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레오파고에서 바라다 본 아크로폴리스.



바오로 사도와 철학자들의 논쟁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우리는 아레오파고를 떠남으로써 성지순례를 사실상 마치고,

먼저 근처에 있는 소크라테스의 감옥을 찾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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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아테네 시내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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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의 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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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의 작은 정교회 성당과 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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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경기장. 오른편의 비석에는 "1988 서울"이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시내 구경을 마친 다음 우리는 시내에 있는 한식당으로 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이스탄불로 향하기 위하여 지나치리만큼 친절했던 가이드 곽동훈 씨와 아테네 공항에서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자정에 떠나는 비행기에 피곤한 몸을 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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