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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

by 大建 2013. 11. 12.

연중 제32 주간 화요일(루까 17,7-10)


붉은 도포를 즐겨 입어서 홍의장군으로 더 유명한 의병장 곽재우(1551∼1619)는 사십이 되도록 초야에 묻혀 살았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분연히 일어나 의병을 모았다. 그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며 왜적을 격파했다. 아군에게도 적군에게도 그의 명성은 높아 갔다. 그를 시기하는 자가 있어, “도당을 모아 백성을 함부로 죽이며 괴롭힌다”고 경상감사에게 무고를 하였다. 감사 역시 그의 전공을 질투하던 차라, 조정에 그 내용을 보고했다. 조정에서 놀라서 조사를 해보니, 사실 무근이었다. 이 일로 감사는 파면되고 그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다.

나라에서는 그에게 통정대부, 진주 목사, 경상 방어사, 함경 감사 등 여러 벼슬을 내렸으나 모두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 왜란 후 깊은 산중에 숨어 살다가, 나이 68세에 하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가 그렇게 벼슬을 사양한 이유는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공직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도 오히려 권력자들, 상급자들의 미움을 받아 감찰, 중징계 등의 불이익을 당하는 여주지청장 윤석열 검사, 송파경찰서 수사과장 권은희 경정 등에 대한 칭송이 자자하다. 현재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를 드러내주는 표지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공직이란 정권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에 충성하는 것이기에 국가를 위해 당연히 자신들의 직책이 부여한 임무를 대쪽같이 수행한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때 우리에게는 보상을 요구할 권리가 없다. 의무를 수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상이 주어진다면, 그것을 받고 안 받고와는 관계없이, 기쁨을 두 배로 누리게 된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했음에 따르는 성취감이라는 기쁨과, 내가 그렇게 한 "올바른 일"이 하늘과 땅 사이에 알려졌기에 내가 명예로운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하신다. 즉 겸손한 사람만이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겸손하지 못할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다 잃게 된다!

우리가 겸손하게 살아간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보내진 것도, 우리가 이 세상에서 하고 살아가는 모든 일도,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주신 소명임을 깨달을 수 있고, 그렇게 될 때 우리는 감사드리는 삶을 살 수가 있다. 그러나 겸손하지 못한 사람은 "가졌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을 잃게 되는 날이 올 것이다!

우리 모두 부르심을 받은 신앙인으로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충실하게 "해야 할 일"을 하는 용기를 지니도록 하자. 권재우, 윤석열, 권은희를 본받아 우리는 정권, 권력자의 하수인으로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나라, 하느님 나라를 위해 살도록 부르싐을 받았음을 자각하고, "해야 할 일, 해야 할 말"을 하지 못하는 비겁한 하느님 나라의 시민이 되지 않도록 조심을 다 하자!

                                                                                                                               (38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