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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당신이 누구요?

by 大建 2014. 4. 8.

 

사순 제5 주간 화요일(요한 8,21-30)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당신이 누구요?" 하며  당신의 정체성을 묻는 바리사이들에게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고 하신다. 우리도 세례 때의 교리를 통해서 이미 예수가 누구이신지를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예수를 모르는 체 하고 살거나, 아니면 실제로 나에게 그분이 누구이신가 하는 질문을 반복하며 산다.

주님께서는 이어서 "나는 너희에 관하여 이야기할 것도, 심판할 것도 많다. 그러나 나를 보내신 분께서는 참되시기에, 나는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이 세상에 이야기할 따름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을 보내셨고, 따라서 당신은 아버지의 뜻을 전할 뿐이므로, 구차한 이야기를 늘어놓지 않으시겠다는 뜻이며,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거슬러 무슨 일을 하든지 개의치 않고 받아들이실 수 있다는 표현이다. 

공자는 자신을 해하려는 환태를 두고 "하늘이 나에게 덕을 주셨는데 환태가 나를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라고 논어에서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나 공자나 "하늘", 즉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고 있기에 거리낄 것도 없고, 두려울 것도 없다는 말씀을 하고 계신다. 이것이 자신이 누구이고 하느님과 어떠한 관계에 있는지 아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리사이들은, 그리고 우리는 스스로가 어떤 존재인지, 하느님과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 모르고 살거나 혹은 알더라도 거의 대부분의 시간에 그러한 사실을 망각하고 살고 있다. 더 나아가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누구이시며, 왜 이 세상에 오셨고, 무엇 때문에 돌아가셨는지도 염두에 두지 않고 살아간다.

이러한 우리와 바리사이들에게 그분께서는 덧붙이신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자신의 본연의 모습과 죄에 대해 인식하고 그분 죽음의 의미를 께달을 때에만, 즉 우리 자신에 대한 성찰을 통해서 하느님과 그분이 보내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만 그분이 "나"에게 누구이신지 온몸으로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시다.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도 회개생활 초기에 "당신은 나에게 누구시며, 나는 당신에게 누구입니까?" 라는 기도를 반복하다가 성 다미아노 성당의 십자가 아래에서 그분의 사랑을 깨닫고는 평생 가슴에 십자가를 새기고 살았다고 하지 않는가!

지식으로만 아는 신앙이 아닌, 온 삶과 연관되는 신앙, 내 존재의 근원과 나와의 관계를 깨닫는 신앙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다.

 

                                                                                                                                   (478C1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