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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by 大建 2015. 5. 5.

부활 제5 주간 화요일(요한 14,27-31)



세상 모든 사람들이 평화를 갈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엉뚱한 곳에서 평화를 찾으려 한다.


평화의 사도라 불리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겪었던 실제 이야기다.


성인이 공동체 생활을 시작할 무렵 아씨시의 귀도 주교가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고 있으니 여러분의 생활은 너무 어렵고 힘든 것 같다"고 하자 

프란치스코가 대답한 말은 이것이었다.


"주교님, 우리가 재물을 소유하면 그것을 지키기 위해 무기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다툼과 문제가 생기는 것은 부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형제를 사랑하는 것도,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도 방해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이 세상에서 아무런 물질적인 부도 원치 않습니다."

프란치스코가 그토록 가난에 집착하였던 것은 우리에게서 다툼과 분열이 생기고 다른 이들을 미워하게 되는 것은,  즉 평화가 깨지는 것은 인간의 욕심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직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난한 삶을 삶으로써 참 평화를 실현하고 또 평화의 사도로서 세상에 평화를 전한 후에, 

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아씨시의 주교와 시장이 불목하자 

화해를 위하여 서로 자존심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생각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피조물의 찬가" 후반부를 지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얻고 채우고 해서 얻으려는 평화를 "세상의 평화"라 할 수 있고, 

버리고 덜어내서 누리려는 평화를 "그리스도의 평화"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의 평화는 내어줌의 평화다. "내 몸이다 받아 먹으라!" 

인류의 용서를 위해서 당신의 피를 흘려 내어주신 평화다. "내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소유욕 지배욕 명예욕은 세상이 추구하는 평화의 수단이고, 

가난과 순명과 정결, 그리고 섬김, 겸손과 희생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추구하는 삶이고 평화다. 

돈이 많으면 일할 때 편안하고 행복해야 정상인데, 

재물의 갈망은 한이 없고 가진 것을 잃을까 두렵고 새로운 근심 걱정들이 위협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평화를 갈구하지만 그 평화를 결코 누리지 못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27).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는 내가 지니고 있음, 더 가짐으로 얻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임을 명심하기로 하자. 

평화는 온전히 하느님께 내어드리고 비우고 의탁할 때 가능한 것이다. 

성자께서는 "나에게 아무 권한도 없다"(30) 하시며 하느님 아버지 앞에서 당신이 온전히 가난한 자가 되셨음을 선언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세상에, 세상 모든 이에게 평화를 주실 수, 남겨 주실 수 있었다.


우리는 과연 어떠한 평화를 구하고 있는지 깊이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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