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측은지심

by 大建 2015. 1. 6.

주님 공현 후 화요일(마르 6,34-44)


오늘 복음에서 예수께서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 같았기 때문에 "많은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측은한) 마음이 드셨다"고 한다.


무엇이 측은하셨을까? 

먼저, 영적 양식을 구하지 못해 허덕이는 모습들에 측은해 하셨다. 그래서 "가르침을 베푸신다". 

그리고는 저녁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들의 모습을 또 그대로 넘기시지 못하고 

소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의 기적"을 행하신다.


여기서 사용된 "가엾이 여긴다"는 희랍어 단어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애(창자)가 끊어질 정도의 아픔을 느낀다"는 뜻이다.

다른 이의 고통을 아파하는 그 마음, 온전한 사랑의 마음이 그분으로 하여금 그렇게 살고 또 죽게 만들었다. 

"측은지심" 때문에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셨다.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 비춰 보면 제자들의 모습은 얼마나 야박하고 인색하기 짝이 없는지...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하며, 자신들이 가진 것을 나눌 생각은 전혀 없다는 듯이 예수님께 따지듯이 묻고 있지 않는가!

오늘날 그분의 제자로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에 그분은 또 한 번 측은히 여기실 것이다.


사랑은 함께 살아가는 이, 더불어 존재하는 이들의 아픔을 내 것으로 느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 우리는 감히 사랑한다는 말을 할 수도, 진정한 사랑을 실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이웃의 삶에 조금 더 민감해지도록 - 예민하게 느끼도록 하자. 

관심을 조금만 기울이면 인생이라는 고해 안에서 지니고 있는 각자의 아픔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고통에 함께 하시며 그래서 구원하시고자 하는 바로 그 측은지심(=자비심=동정심+사랑)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신 그분께서 여전히 우리를 측은히 여기고 계신다. 


이처럼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우리가 본디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가장 첫 근거는 측은지심이 있기 때문이다.

맹자 또한 인간이 본래부터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성선설을 내세우며 이것을 사단(선을 싹틔우는 4개의 단서, 실마리)인 측은지심(惻隱之心) · 수오지심(羞惡之心) · 사양지심(辭讓之心) · 시비지심(是非之心)으로 나누었다. 


그러한 그분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우리 또한 이웃을 측은히 여기도록 하자. 인정머리 없는 야박한 그리스도인이 되지 말자는 이야기다. 이웃의 아픔에 함께 하고 그 아픔으로부터 이웃을 구해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가질 때 우리는 참된 하느님의 자녀, 참된 그리스도인, 아니 궁극적으로 사람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9S)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늘 하시던 대로  (2) 2015.01.08
두려움을 넘어서야  (0) 2015.01.07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0) 2014.12.27
성탄은 하느님의 죽음을 기념하는 것  (0) 2014.12.26
이름 값을 하자  (2) 2014.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