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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두려움을 넘어서야

by 大建 2015. 1. 7.

 

공현 후 수요일(1요한 4,11-18; 마르 6,45-52)

 

오늘 복음은 우리가 믿음의 길로 나아가는데, 하느님과 만나는데 걸림돌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묵상해보도록 초대한다.

 

그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하느님께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오히려 그분께 나아가는 믿음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경우를 심심치 않게 본다. 이는 하느님을 심판주,  벌주시는 분으로만 생각하는 결과이다. 그러나 계시에 나타나는 하느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그러한 두려움의 대상, 우리를 감시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으면 처벌하는 그런 독재자, 폭군이 아니시다.

오히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 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요한 3,16) 분이시다.  하느님의 강생은 인간의 두려움을 없이 하고 당신과 사랑의 관계에 들게 하기 위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풍파가 순례여정 중에 있는 우리 삶을 휘몰아친다 하여도 오늘 복음에서처럼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하시는 분이 내게로 다가오신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평화를 잃지 않고 기쁨 속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르꼬복음 5장에 나오는 하혈병 앓는 여인도 자기가 주님의 옷에 손을 댄 것을 그분이 알아채시자 "두려워 떨었다"고 한다. 부정한 사람이 정하신 분에게 손을 대었으니 율법을 어긴 것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다가오기는 하였지만 그분과의 관계맺기는 생각지도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여인에게 주님께서는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하시며 두려움을 넘어 그 여인을 일으켜 주신다. 

그리고,  자기 딸을 고쳐주시기를 청하는 회당장에게는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여라”하시며 당신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 살아계신 하느님이심을 분명히 밝히시며 몸소 그의 집으로 향하신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두려움을 없애주시며 친히 다가오셔서 당신과 관계를 맺도록 해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모든 것으로부터 궁극적으로는 죽음으로부터 구원해 주시는 분이시다.

 

신구약 성경에는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이 모두 236번 나온다. 그 대부분이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니 두려워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렇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 임마누엘이시다. 진정 그분이 나를 지켜주시고 구해주시는 분, 나를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나는 세상 어떠한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제가 비록 어둠의 골짜기를 간다 하여도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니 당신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막대와 지팡이가 저에게 위안을 줍니다"(시편 23,4) 하고 시편에서 노래하지 않는가!

 

어떤 사람이 해가 진 후에 공동묘지를 넘어 막 마을로 가려하다가 너무나 밝은 얼굴로 뛰어노는 한 꼬마를 만났다. "공동묘지 근처인데 너는 무섭지 않니?" 이 사람이 이렇게 묻자 꼬마는 "아니오"라고 하면서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다. "왜 무섭지 않지?" 다시 이 사람이 묻자 꼬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빠가 이 묘지 관리인이거든요". 하느님을 참 주님으로 모시고 사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1요한 4,18)

                                                                                                                        (5H2I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