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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소문과 소식

by 大建 2015. 9. 24.

연중 제25 주간 목요일(루까 9,7-9)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고 한다.

왜? 호기심에서, 그리고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가 훌륭한 예언자라는 소문이 이미 널리 퍼져 있었기에 아무리 사악한 헤로데였지만 그분을 한 번 만나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한편,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났다”하는 소문도 들렸기에 그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어 도대체 예수가 어떤 분이시길래 죽은 사람의 화신이라는 말까지 들릴까 하면서 그 소문을 확인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죄짓고는 못 사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예수를 만나 보려고 하였을 뿐이고 그 마음을 바로 실행에 옮기지는 않은 것 같다. 복음에는 루까 23장 이외에는 예수가 그와 만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이 때에는 헤로데가 원해서가 아니고 빌라도가 그분을 헤로데에게 보냈기 때문에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고, 이미 두려움이 가신 상태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을 업신여기고 조롱한 다음, 화려한 옷을 입혀 빌라도에게 돌려보냈다"고 한다(루가 23,11).


어쨌든 헤로데는 호기심과 두려움에 일시적으로 그분을 뵈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그리 간절한 것도 아니었고, 또 그분 때문에 자기 삶에 간섭이나 영향을 받고 싶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분을 만나고자 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만일 예수께서 헤로데의 일에 이러저러한 비난을 하셨다면, 아마도 그는 세례자 요한을 죽이듯이 그분을 죽이면 그뿐이었다. 권력을 누리는 자들은 이렇게 다른 사람이 자기 삶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원치 않고 그래서 힘으로 그러한 시도를 막는다. 이 나라의 모든 독재자들이 그러했고, 오늘날에도 자기에게 반대하는 이들에게 가차없이 숙청의 칼을 들이대는 매서운 권력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에도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이 있다. 이 시대에도 그분에 대한 소문, 소식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제로 그분을 만나려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에, 한 때 호기심과 두려움에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다가 포기하거나 시간이 흐르면 망각하고 살아간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떠한가? 우리는 이미 소문 이상의 것, 참된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구원자,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능력과 은총으로 내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자 한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고자 한다. 

단순한 호기심과 이기심을 넘어서 참된 마음으로 그분을 내 삶 안에 모셔들이려 노력할 때 진정한 구원이 주어질 것이다. 나 자신과, 이웃,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을 만나러 나아가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