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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by 大建 2016. 4. 5.

부활 제2 주간 화요일(요한 3,7ㄱ.8-15)


우리 수도회에는 러시아나 카자흐스탄 같이 공산주의 체제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변화된 나라에서 선교를 하다 온 신부님, 수사님들이 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공통적으로 "이 나라의 대부분 국민들은 아직 민주주의의 국민이 누릴 수 있는 자유에 익숙하지 않아서 주어진 일 외에는 하지 않으려는 타성이 있고, 따라서 노력한 만큼 누릴 수 있는 일정 수준의 자본주의적 이익도 향유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 나라 국민들에게도 비슷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고, 그것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 확신하고 있다.

우리 나라는 왕정 체제에서 바로 왜국의 식민지로 넘어갔다가 사실상 타력으로 해방되어 잠시 자유를 만낏하였지만, 그것도 전쟁으로 오래가지 못하였고, 결국 휴전 후에 이남에서는(여전히 전체주의적 세습 왕조가 지속되는 이북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노태우로 이어지는 긴 독재의 시기를 겪어왔다.

그러다보니 깨어난 시민들의 항쟁과 혁명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쟁취한 서구 국가들과는 달리 거저 주어진 자유인지라 그 가치 개념이 희박하여지고 더군다나 독재 치하에서는 그 가치가 상실되었던 터라, 민주주의가 어는 정도 회복된 아직까지도 자유가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 줄 모르고 전체주의적 발상 아래 호도하는 유사 독재집단에게 세뇌당한 채 무지몽매하게 정권의 하수인 노릇하며 주구로서 살아가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더군다나 일정 시대부터 다른 이들의 안위에는 관심이 없이 자신의 영달과 치부에만 몰두해 온 친일파들과 재벌이 누리는 호사는 결국 이 사회의 윤리 개념 마저 무너 뜨렸고, "목적달성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권모술수를 다하는" 마키아벨리즘과 "돈이면 다 된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만개하도록 하였으니, 이 나라 현실은 그저 암담하기만 하다.


많은 깨어 있는 시민들이 이러한 상황을 바꾸려고 노력하지만, 그러한 현실에 너무 오래 익숙해져온 대부분의 무지몽매한 이들은 마냥 "그냥 이대로가 좋아"이기에 사회의 변화는 문자 그대로 요원하다.

심지어 교황님을 비롯한 적지 않은 성직자, 수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 즉 복음의 빛에 따라 현 시대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고쳐나가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적지 않은 신자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러한 성직자, 수도자들을 매도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교회의 지도자인 양 하기도 한다.

참으로 오늘날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앙에 대해서 너무 무지하고 몰이해하구나 하는 회의가 드는 적이 많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시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한다. 그러나 너희는 우리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내가 세상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시피,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 죄인들, 병자들, 죄인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시고 품어안는 방법으로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하셨고, 여러 가지 비유와 상징 들을 통하여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드러내시는 삶을 사셨다. 즉 그분께서는 세상 일을 통하여, 세상 일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전하고자 하셨는데 유다인들이 받아들이지 않자, "내가 세상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않는데,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찌 믿겠느냐?"하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질책의 말씀은 신앙을 그저 뜬 구름 잡는 이야기 정도로만 여기고 자신의 삶과는 온전히 동떨어진 신앙 생활을 하는, 즉 복음과는 무관하게 사는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향하는 매서운 말씀임을 깨닫아야 한다. 


마침, 우리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주님의 말씀대로 정말 깨어 있는 자세로 무엇이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길인지 기도하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지역적 편견에 매달려 무조건적으로 투표하지 말고, 신앙과 양심에 따라 투표하는 복음적인 자세를 견지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