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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by 大建 2016. 5. 3.

성 필립보와 성 야고보 사도 축일(요한 14,6-14)


가끔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세례받은지 몇 년이 되었는데도 천주교 교리는 여전히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그럴 때 마다 나는 "교리를 아는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을 실천하고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교리는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잘 살아가게끔 도와주는 지침이다. 따라서 교리 자체가 중심이 되어서는 아니되고, 오히려 우리가 하느님을 올바로 공경하고 특히 사랑의 이중 계명으로 대표되는 그분의 가르침과 계명을 잘 실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사목자들이나 신자들이나 주객이 전도된 신앙 생활을 강조하고 또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랑"이신 하느님에 촛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분을 뵙는 장소에 지나지 않는 교회라는 제도와 부수적인 계명들에만 신경을 집중하다 보니, 신앙 생활에 기쁨이 없을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닐까!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신다! 그리고 이 사실을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분명히 가르쳐 주셨다. 예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만 그것을 가르쳐주신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어 행하신 여러가지 기적들, 그리고 일상적인 행적들(예를 들어, 자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하는 것 같은)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벌하시는 분이라기 보다는 우리를 자애로이 돌보시는 아버지시라는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당신 스스로 그렇게 사심으로써 기쁨에 넘치셨다는 것을 복음서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루까 10,21). 

"그렇습니다, 아버지!" 우리도 성령 안에서 예수님과 더불어 기뻐 하며 이렇게 외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처럼 "측은지심"을 지니고, "현대의 가난한 사람과 고통에 신음하는 모든 사람들의 슬픔과 번뇌"에 함께 하며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것(사목 1)은 모든 신앙인의 소명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가르침처럼 "진실로 인간적인 것이라면 신앙인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은 진정 모든 인간에 관한 관심이 당신의 가슴에 "가련한 마음"으로 전해짐을 느꼈고 바로 그러한 이유로 인간들을 위해서 당신 자신을 바치는 삶을 살아가신 분이고, 이웃들, 특히 어려움 중에 있는 이웃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전함으로써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드러내신 분이시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교리를 잘 모르겠다", "하느님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다"는 말만 되풀이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몸소 살아가시고, 우리에게 제시해 주신 길, "십자가의 길", "사랑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기로 하자. 그렇게 할 때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하신 말씀의 뜻을 깨닫게 되고 참된 기쁨을 얻게 될 것이다.  


뱀다리: 세월호 사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 묵상해 보고, 그분과 함께 실천에 옮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기로 하           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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