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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사랑의 기쁨

by 大建 2016. 4. 28.

부활 제5 주간 목요일(요한 15,9-11)


프란치스코 교황은 당신의 첫번째 사도적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를 다음과 같은 말로 시작한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가득 채웁니다.” 우리는 교황님의 이 말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하는 말씀에 바탕을 둔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사실, 많은 이들이 처음 예수님을 영접하고, 그분의 말씀과 그분의 인격을 접하게 될 때, 벅차오르는 기쁨을 체험하였음을 증언한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신이 자비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 안에 태어났고, 그 사랑을 누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기쁨에 넘쳐 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는 이는 그분께 사랑을 돌려드리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 말씀으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쁨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해주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당신이 아버지 하느님의 계명을 지켜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님의 계명을 지켜서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 수 있다고 하신다. 여기서 우리는 재미있는 관계를 볼 수 있다. 계명과 사랑의 괸계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머물게 된다는 것이다. 계명은 사랑의 표지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계명을 주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이 말씀은 당신의 사랑을 본받으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는 우리가 당신을 본받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 하신 말씀이다. 하느님의 사랑의 계명은 버거운 것이 아니다. 가볍고 즐겁고 기쁜 것이다. 


가끔 혼인미사 후 특송으로 친구들이나 성가대에서 "사랑의 기쁨"(Plaisir d"amour) 이라는 서양 노래를 부를 때면 기가 막혀서 마음 속으로 웃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 노래의 가사 첫 귀절은 "사랑의 기쁨은 어느덧 사라지고 사랑의 슬픔만 영원히 남았네"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 노래는 제목과는 정반대로 사랑의 슬픔을 한탄하는 노래이다. 하지만 사랑이 그렇게 슬픈 것일까? 그렇다면, 왜 그토록 수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하고자 기를 쓸까?

더 나아가, 기쁨이 없는 사랑이 존재할 수 있을까? 왜냐하면 사랑에는 꼭 기쁨이 따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기쁨이 없는 사랑, 슬픔만 남아 버리는 사랑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느님으로부터 비롯되지 않은 "육적이고 이기적인 사랑"일 것이다. 

 

우리가 마음 안에서 이기심, 자기중심성, 개인주의적 성향 등을 몰아내고 진정한 하느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게 되면, 우리 안에는 기쁨이 가득 차게 된다. 사랑은 기쁨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관계의 회복,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 복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