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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죽음을 통한 화해

by 大建 2016. 2. 18.

사순 제1 주간 금요일(마테 5,20ㄴ-26)


1.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고 하다가, 거기에서 형제가 너에게 원망을 품고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거기 제단 앞에 놓아두고 물러가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그런 다음에 돌아와서 예물을 바쳐라." 형제간의 갈등을 해소하지 않고는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것이 의미없다는 말씀인 것이다.


2. 여기서 말씀하시는 형제는 넓은 의미에서 "이웃"을 뜻하시는 것이지만 실제로 구약성경을 읽다 보면 피와 살을 나눈 형제간에도 갈등이 만만치 않았음을 알 수 있고, 그런 것으로 미루어 보면 인류의 역사는 형제간의 갈등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아우 아벨을 살해하여 첫 살인자로 등장하는 카인의 이야기나, 이삭과 이스마엘이 적자(嫡子)와 서자(庶子)로서 갈등을 겪는 이야기나, 장자권을 놓고 갈등을 빚는 야곱의 에사오의 이야기, 그리고 막내 아우 요셉을 이방 상인들에게 팔아버리는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야기나 모두 골육간의 상쟁을 다루는 이야기들이고 이처럼 형제간의 다툼은 인류 분쟁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주제 중의 하나였다.


3.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 들 중에서 야곱과 에사오, 그리고 요셉과 형제들의 이야기는 형제간의 갈등이 화해로서 봉합이 되고 해피엔딩으로 막을 내린다. 성경에는 위에 든 예외에도 형제간의 갈등 이야기가 더 있지만 화해의 이갸기로 끝나는 것은 저 두 가지 경우 밖에 없다는 것은 그만큼 화해가 힘들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혈육간의 화해가 어려우니 다른 이들과의 화해는 말해 무엇하랴!


4. 화해는 그만큼 어렵고 힘이 드는 것이다.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 등지고 살던 인간이 하느님과 화해하게 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덕분이었음은 그러한 사실을 분명하게 전해준다.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콜로 1,21-22)


5. 그렇다. 진정하고 완전한 화해는 하느님 아버지에 대한 사랑 때문에 나를 죽이고, 나를 없이 할 때에 가능한 것이다. "자기애(自己愛), 자애심"이 남아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방을 탓하고 미워하고 배척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었음을 기억한다면 나는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에 승복하지 않을 수 없고, 그러한 사랑 앞에 자기애와 같은 천박한 것은 자리잡을 수 없게 되며, 그러한 겸손한 마음 안에서 형제와의 화해는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6.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제물삼아 우리와 화해하신 하느님의 당신을 비우시는 겸손(자기비허, Kenosis)을 배우도록 하자. 참된 제사는 다른 어떤 물질적인 제물을 바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치는 희생제물로 바치는 것임을 상기하면서 우리도 매일 미사 성제를 거행할 때, 비루한 자기애를 없이 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나를 바치며, 형제들, 이웃을 진정으로 끌어안고 화해하는 기쁨의 희생제사를 바치기로 하자.

                                                                                                                                                                  (6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