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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평화를 빕니다

by 大建 2016. 7. 7.

연중 제14주간 목요일(마테 10,7-15)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하고 이르신다. 오늘날에도 그래서 신자들은 다른 집에 들어갈 때마다 "이 집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를 하는 풍습이 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단순히 인사를 하라고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사람들이 만나면 인사를 하는 것은 기본적인 예의인데, 제자들이 그렇게 예의가 없어서 특별히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 집에 평화(shalom)를 빕니다"하는 인사는 보다 깊은 뜻을 담고 있다. 

민수기에 따르면 "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공동번역 민수 6,24-26). 


이렇게 평화는 그냥 인사로 건네어 지는 말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인 것이다. 즉 허공에 사라지고 마는 단순한 인사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자체가 전달되는 것이고, 따라서 상대편이 그 평화를 받아들일 자격을 갖추었으면 그 사람의 소유물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말한 사람이 그것을 도로 거두어들여야 하는 그러한 것이다. 그러므로 "평화"는 주님께서 주시는 종말론적 구원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제 파견되는 제자들은 단순히 말로써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하느님의 은총, 하느님의 구원, 하느님 나라라는 실재"를 몸소 전달하는 "사신, 사도"가 되는 것이다.


사실 다른 곳에서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 하셨다. 세상이 주는 평화는 상대적일 수 밖에 없지만 당신이 주시는 평화는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것임을 뜻하는 말씀인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러한 이유로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하고 말하고 (에페 2,14-17) 그분이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총, 선물로 주어진 평화 자체이심을 그리고, 그러한 평화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 우리는 입으로만 이웃에게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리 하신 것처럼 우리도 삶으로 평화를 전해야 할 것이고, 몸소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로 화해를 이루신 그리스도의 평화를 내가 몸소 살아냄으로써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도래하였음을 이웃에게 증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