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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언행일치, 지행일치, 신행일치

by 大建 2016. 9. 10.

연중 제23 주간 토요일(루까 6,43-49)

 

공자는 제자들에게 평소 ‘언행일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子曰 古者 言之不出 恥躬之不逮也." (옛 사람이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행동이 말에 미치지 못할까 부끄러워해서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에게 언행일치(言行一致)와 지행일치(知行一致), 신행일치(信行一致)를 강조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 '주님, 주님!' 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즉, 우리가 그분을 "주님"이라고 부른다면, 우리가 신앙인임을 나타내는 것이니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고, 주님에서 가르치시어 우리가 배워 아는 것과 그분이 명하신 것을 실천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오늘날, 특히 한국 사회 안에서, 종교의 문제는 바로 이 언행일치가 이루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종교인들을 욕하고 있고, 입교를 하였던 사람들도 그 종교에 실망하여 떠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는가!  특히 갈라진 형제 교회의 경우 최근 신자수의 감소가 두드러지고 있는데, 그것은 특히 해당 교회 지도자들의 언행이 일치 하지 않아 생기는 비리가 정보화 시대인 오늘날, SNS 등 각종 매체들을 통하여 드러나고 또 전파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는 대로 산다는 것, 예수님과 교회로부터 배워 아는 대로 실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말한 대로 행동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인간의 죄의 멍에와 연약성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말하는 것, 내가 아는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나는 더욱 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그분과는 관계가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므로, 언행일치, 지행일치, 신행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신앙인, 그리스도의 제자,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길인 것이다.

 

그 누구도 완전한 인간은 없다. 선한 행동을 하고 그것이 습관이 되게 하여 선한 습관을 만들고,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더욱 그러한 습관들이 덕(德)이 되어 나아갈 때 우리는 더욱 더 영성 생활에 진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습관을 쌓고, 나쁜 습관을 끊어버리는 데는 훈련, 단련(disciplina)이 필요하다. 이 말은 덕을 쌓는 것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제자(disciplus)가 되는 것은 훈련과 단련없이는 불가능한 길이다. 

이러한 점에서, 성직자, 수도자들도 그러한 신분으로 사는 것 자체 만으로는 부족하고 훈련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성직자, 수도자들은 더욱 모범적으로 고신극기, 즉 단련을 하면서 제자와 사도로 불러주신 은총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한다. 성인들은 바로 그렇게 성덕(聖德)을 쌓으신 분들인 것이다. 

 

내 주변의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고, 적지 않은 형제 자매들이 냉담의 길로 들어서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의 삶 속에서 언행일치, 지행일치, 신행일치가 보여지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음을을 깨닫고, 오늘부터 우리가 말하는 것, 아는 것, 믿는 것을 실천하는 훈련을 하고, 그리하여 매일의 삶 속에서 좋은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의 훌륭한 제자가 되어, 죽는 순간에 예수님 처럼 "다 이루었다" 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6H3김엘)

좋은 열매. 무화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