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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거룩한 호기심

by 大建 2016. 9. 22.

연중 제25 주간 목요일(루까 9,7-9)


내가 입교하던 당시, 종교의 필요성을 느끼고 어느 종교를 택할 것인지 고민하던 중, 어느 날 문득 지나가던 길 옆에 성당이 보이자 나는 무작정 저곳에서는 무엇을 가르치나 하고 막연한 호기심으로 들어갔다가, 그곳에 영원히 머무르시는 분께 발목을 잡혀 오늘날까지 오게 되었음을 전에도 말한 적이 있다.


또한 우리 한국 교회의 시작도 당시 실학자들이 서학, 즉 천주교에 대해 지녔던 호기심에서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순간적인 호기심, 혹은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일에 대한 호기심이 한 사람의 인생이나 세상을 바꾸어 놓는 예는 많이 있다. 특히 과학자들에게서 이러한 예를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철학하는 십대가 세상을 바꾼다"라는 책을 지은 데이비드 A. 화이트 박사는 "철학을 하는 것은 세상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를 통해 생각을 멈추지 않는 것, 자신만의 답을 찾도록 계속 탐구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십대의 미래와 세상을 바꾼다"고 말한다. 그러니 아이들이 호기심을 키우며 탐구하는 생활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 건전한 호기심을 가지고 그 답이나 해결책을 찾으려고 진지하게 노력할 때 우리는 그만큼 성장하게 되는 것이고 나와 세상에 대한 놀라운 변화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구체적인 탐구가 없는 호기심은 자신을 성장시키지 못하고, 세상에도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헤로데가 지녔던 호기심도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순간적인 호기심이었을 뿐인지라, 자신과 세상에 변화를 불러오는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하였다. 헤로데는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하면서 예수님을 만나 보려고 하였다. 하지만 실제로 그가 예수님을 만나보려 시도한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예수님의 수난 당시에 빌라도가 그분을 자기에게 보냈기에 그분을 그저 실패한 예언자 정도로 여기고 조롱을 한 후 빌라도에게 돌려보냈을 뿐이다(루까 23,612).


만일, 헤로데가 그분을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즉시 실행하여, 예수님의 가르침과 인격을 접해 보았다면, 복음서는 지금과 다른 내용을 우리에게 전해주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가르침, 그분의 행적, 그분의 인품에 호기심을 가지고 그분에 대해서 보다 깊이 알고, 그분을 내 삶 안에 보다 깊이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혹은 천주교에 대한 일시적인 호기심을 가지고 어쩌다 세례는 받았지만, 피상적으로만 종교를 받아들이고, 결국 그분이 전해 주시는 인생의 깊고 기쁜 맛에는 접해 보지도 못한 채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발바닥 신자는 아닌가? 깊이 한 번 반성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