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by 大建 2017. 10. 12.

연중 제27 주간 목요일(루까 11,5-13)


복음을 묵상하면서 다시 한번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나의 아버지는 무척이나 완고하시고 또 (경상도 남자들 이상으로)무뚝뚝하신 분이었다. 그래서 사춘기 이래로 대화가 점점 줄어들었고 그것이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제와 생각하니 참 마음이 아프다.  있는 그대로의 그분을 이해하고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그리고 내가 더 살갑게 다가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적어도 대학을 졸업하기 이전까지, 즉, 부모님께 의지하여 사는 동안에는 아버지는 우리 형제에게 물질적으로 최대한 잘 해 주시려고 노력하셨음을 안다(내가 대학 다닐 때는 하시던 사업의 실패로 가세가 많이 기울기는 했지만).

그래서 어렸을 때는 부모님에게 떼도 많이 쓰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떼를 쓰면 언젠가는,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과 같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바램을 최대한도로 들어주시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이 부유하지는 않았어도, 아버지는 당신 능력 안에서 자식들의 바램을 들어주시고자 하셨던 것 같다. 당신이 일찌기 부모님을 여의고 외롭게 자수성가 하셨기에,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끔찍하셨다. 그래서 우리가 조르는 것도 어느 정도는 즐기지 않으셨는가 싶기도 하다.


우리는 혹시 아버지의 그러한 사랑을 이용해 먹으면서 자란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자식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다 들어주시는 그러한 사랑을...


복음에 비추어, 우리는 기도 생활에 대하여 다음 세 가지를 성찰해 보기로 하자.

1.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나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신뢰하는 마음으로 자주 청하는가?

2. 아니면, 아버지 하느님을 신뢰하지도, 사랑하지도 않기에 대화와 청원으로서의 기도를 포기하고 살지는 않는가?

3. 하느님 아버지의 너그럽고 자애로운 마음을 이용하기만 하고 그분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돌려드리지는 않는 삶을 살지는 않는가?


내가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는 그분과 나의 관계를 드러내는 척도인 것이다.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의 징조  (0) 2017.10.27
깨어 있는 자세로 책임있게 살아가기  (0) 2017.10.24
강인한 여인 마리아  (0) 2017.09.15
탈렌트인 나  (0) 2017.09.02
천박한 삶과 고귀한 삶  (0) 2017.0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