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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이탈리아 성지순례 5 - 아씨시 가는 길

by 大建 2008. 2. 20.

라베르나에서 아씨시로 가는 길은 제법 긴 거리였다. 그리고 가는 길목에는 첼레 은둔소, 성녀 마르가리따의 성지 꼬르또나, 그리고 트라시메노 호수 등 프란치스꼬를 사랑하는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곳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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첼레 은둔소

프란치스꼬는 1211년에 여기에 처음으로 머물렀으며, 사순절을 지내기 위해 여기서 트라시메노 호수로 떠났다. 1215년에는 스페인 선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이 곳에 머물렀다. 또한 그는 1226년 중반에 시에나에서 아씨시로 옮겨가면서 며칠간 쉬는 동안 마지막으로 이곳에 머물렀다. 이 때에 여기서 "시에나의 유언"을 썼을 것으로 본다.

첼레 은둔소에서 있었던 일 ===> 2첼라노 88

<꼬르또나>

작은 형제회의 막달레나라고 불리는 마르가리따(1247 - 1297)는 꼬르도나 근처의 라비아노에서 출생하였다. 7 세가 되던해 신심 깊은 어머니를 여의게 되는 데 이 때부터 그니의 시련은 시작되었디. 아버지는 어린 그니를 돌보는 데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고 새로 들어온 계모는 무정하게도 거칠게 대하였다. 견디다 못한 마르가리따는 열여덟 살이 되던 해 가출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니의 빼어난 미모는 바로 그니의 유혹이었다. 그리하여 9 년동안 부유한 귀족의 정부 노릇을 하며 공적인 죄의 생활을 한다. 어느 날 그의 정부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는데 그의 개가 와서 그니의 치마자락을 끌며 숲속으로 인도했는데 거기에는 피투성이가 된 정부가 쓰러져 있었다. 공포에 질린 그니는 스스로 반문했다. "지금 그의 영혼은 어디로 갔을까?" 그니는 즉시 자신의 생활을 청산하고 공적 회개와 겸손의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니의 아버지와 계모는 그니를 받아 들이지 않았지만 작은 형제들의 지도 아래 회개 생활을 계속할 결심을 고수하였다. 3 년 동안 시련기를 마친 후 3회 착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 후 초인적인 엄격한 보속 생활을 계속함으로써 지상적 유혹을 극복  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관상과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은총을 허락하셨다. 그 니가 살아 있을 때와 죽은 후에 그 니의 중재로 수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다. 그의 시체는 썩지 않고 지금까지 꼬르도나에 보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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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시메노 호수>

 트라시메노 호수는 해발 268m로 페루지아 지방에 자리 잡고 있다. 이 호수는 바다라는 느낌이 들만큼 꽤나 넓다. ‘페루지아 호수’라고 불렀던 트라시메노 호수는 이탈리아의 호수들 가운데 네 번째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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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호수에 있는 프란치스꼬성인상. 밑에 성인의 거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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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이라 섬을 오가는 배의 왕래가 제한적이기에 아쉽지만 멀리서 이슬라 마죠레를 바라보고서 우리는 아씨시로 향하는 버스에 다시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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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브리아 평원에 지는 태양(버스 안에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