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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연대하는 십자가

by 大建 2020. 4. 10.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오늘 우리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십가가의 치욕스런 죽임을 당하신 주님의 수난을 기념하는 성 금요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과연 그 보혈의 은혜로 오늘날까지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이 널리 퍼지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성령과 더불어 영광 중에 계십니다.

하지만 2020년 사순절을 교회는 진정 비통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습니다.
전세계에 코로나 19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병이 확산되어 오늘 오전 현재 160만 여명이 감염되었으며, 사망자는 95000여명에 이르는 등 진정 팬데믹의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이 이 코로나 19 사태가 환경 재앙의 일부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쥐 등 감염 매개 동물의 서식지에 대한 무분별한 개발과 무제한 적인 먹거리 남획이 그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급격한 기후 변화와 그로 말미암은 크고 작은 자연 재해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자비하신 창조주 하느님께서 징벌을 내리시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은 "시대의 징표"로서 이 재앙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을 경우 암울한 미래만이 다가오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깊은 반성과 뼈를 깍는 자구 노력이 없이 하느님께만 희망을 둔다고 말하 것은 우리의 신앙, 우리의 종교를 기복 신앙과 싸구려 미신 행위로 돌려버리는 것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순절을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강요된 피정 기간으로 지내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사순절의 절정인 성 금요일을 맞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점에 저는 두 가지가 앞으로 우리가 지속적으로 묵상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과연 우리 인간은 박쥐를 비롯한 감염매개 동물에게만 죄를 뒤집어 씌우면 그뿐인가? 오히려 그 동물들, 그 생물들 역시 피해자일 뿐이며 인간들에 의해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서 억울하게 죽음으로 내몰린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비단 인간뿐만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을 위한 것이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피조물은 하느님의 자녀들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허무의 지배 아래 든 것은 자의가 아니라 그렇게 하신 분의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희망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의 자유를 얻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만이 아니라 성령을 첫 선물로 받은 우리 자신도 하느님의 자녀가 되기를, 우리의 몸이 속량되기를 기다리며 속으로 탄식하고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18-25)
특별히 프란치스코 성인의 제자들로서 살아가는 우리는 피조된 세계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 일상 생활 안에서의 기후 위기 타파와 생태계 보호를 위한 십자가를 더욱 책임있는 자세로서 지고 살아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일상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공동체로서 또 개인으로서 깊이 숙고하도록 합시다.


두번째로, 어떠한 재앙, 재난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장 희생을 강요받는 사람들은 역시 가난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번 팬데믹에서도 그러한 사실은 틀림없는 진리로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한 이들, 소외된 이들의 벗이 되어 주고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다가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권력자들의 미움을 사서 십자가에 못박히게 되었다면, 우리도 이 시대에 별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사회적, 경제적으로 희생을 당하고 있는 이들을 기억하고 그들 곁에서 그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자 하는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입니다.
"마스크"를 핑계로, 가난하다는 이유로 더 고통받는 이들에게서 점점 거리를 두기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보호하는 마스크" 같은 역할을 해주는 연대를 하는 삶을 살아나가도록 합시다.

특별히 종교적으로 특권을 누리면서 매일 미사를 해온 우리가 미사 참예와 영성체를 갈망하며 매일 드겁게 기도를 바치고 있 평신도들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리고 얼마나 위로해 주었는지도 깊은 반성거리가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연대하시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죄인과 연대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을 깊이 묵상하면서 "멸망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그 날을 희망하며 우리도 고통받고 있는 모든 피조물들과 특히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종교적으로 가난한 이들과 연대하며 살아가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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