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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구원하시는 하느님

by 大建 2020. 4. 22.

부활 제2 주간 수요일(요한 3,16-21)

 

 

흔히 부처님은 대자대비하신 분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하느님은 "대대자자대대비비하신 분이아닐까?" 하고 혼자 너스레를 떨어 본다. 

그렇게 자비하신 하느님이신데, 그분이 종말에는 우리를 엄하게 심판하시라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두려워 하기만 하는 신앙인이 적지 않은 듯 하다. 

 

그러나 사랑 자체이시고 자비 지극하시다는 하느님께서 나약한 인간을 어찌 그리 엄하게만 다루시겠는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심판을 불러들인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사실 인간은 자비하신 하느님을 믿고 그분 뜻에 맞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꾸려나감으로써 구원을 불러들일 수도 있고, 반면에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만 살다가 불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요한 3,18절) 하시는 것은 바로 이러한 뜻이리라!

 

 

인류의 역사 안에서, 그리고 개별 인간의 인생사 안에서 그분께서 더러 심판하시는 일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렇기에 우리가 죽기 보다는 회개해서 살기를, 부활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시고, 그래서 당연히 우리를 구원하셔야만 했던 분이 하느님이시라는 것이 성서 전체의 가르침이요, 우리의 믿음이다. 그렇기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존재 전체를 희생제물삼아 당신께 바치심으로써 구원을 이루도록 그분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섭리하신 분이 바로 우리가 믿는 자비하신 하느님이라는 것은 내게는 오히려 지극히 논리적인 사실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하느님께 우리가 희망을 두고 기쁘게 살아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또한 그러한 희망을 지니고 사는 사람은 어두움 속을 헤매지 않는다. 

 

 

죽음의 5단계라는 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하느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이시다. 이승에서의 삶을 되돌아보는 동안 당신은 자신의 운명에 대해 하느님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성숙할 수 있는 많은 기회를 무시해 버린 당신 자신을 고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가장 최악의 적이 바로 당신 자신이었음을 알 수 있다.”

 

 

리는 과연 어떠한 하느님을 믿고 있는가? 천국과 지옥은 종말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불신에 따라 바로 지금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고 그것은 결코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선택의 결과인 것이다. 

                                                                                                                                    (0S1Ic)

구원의 표지 - 무지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