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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강한 여인 마리아

by 大建 2010. 5. 31.

성모 방문 축일(루까 1,39-56)

성모성월,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 교회는 동정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로 지낸다.
그리고 많은 본당과 단체들에서는 오늘 저녁 "성모의 밤" 행사를 화려하게 거행한다.
성모의 밤 행사를 거행하기 전에 성모님의 삶을,
그분의 신앙을 묵상해 보는 것은 참으로 의미있는 일이다.

먼저, 성모님은 참으로 강한 여인이 아니었는가 생각된다.
그리고 그 강함이 신앙으로부터 유래함은 두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먼저, 그니는 인간으로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하느님의 제안 -동정녀 잉태-를 순순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렇게 어렵게 얻은 아들 예수의 죽음을 바라보면서도
그니는 굳세게 흔들리지 않고 "서 있었다"(요한 19,25).

그니의 강인함이 또한 잘 드러나는 이야기가 바로 오늘의 복음이다.
마리아는 자신도 임신한 몸으로서
나자렛에서 아인카렘까지 거의 120Km 정도 되는 거리를 당시의 불편한 교통 상황에도 불구하고
"걸음을 서둘러"(루까 1,39) 여행을 하였다.
단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엘리사벳을 찾아보려는 마음으로...
무엇 때문에 엘리사벳을 방문하고자 했을까?  복음 만으로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석달 동안 지내고 돌아갔다"는 이야기로 미루어
고령에 만삭인 친척 엘리사벳을 돌보기 위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마리아의 강함, 위대함은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자신의 힘든 처지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이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하느님께서 자비하신(misericordiosus,
他者의 비참함(miseria)를 당신 마음(cor)에 담고 계시는) 분임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니 또한 그러한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본받으려 했던 것이다.
남의 아픔을 남의 것으로 여기지 않는, 오히려 자기의 것으로 여기는
자비는 곧 사랑과 연대로서 구체화되는 것이다.
마리아는 이렇게 연대하시는 하느님께 철저한 신뢰를 두고 감사하며 살던 여인이었다.
그녀의 전 생애는 바로 이러한 신앙 안에서만 옳게 이해될 수 있다.
루까 1,46-55절의 소위 "성모의 노래"(Magnificat)은 이러한 그니의 하느님 찬가인 것이다.
비천한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자비를 찬양하는 이 노래를 그니는 삶으로써 옮겼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까지 성모상 앞에 꽃을 바치고 묵주의 기도를 하고
성모 성가 몇 곡 부르는 것으로 연중 행사를 마무리 지으면서
성모 신심을 왜곡시키기만 할 것인지...

성모님의 강인함, 신앙으로부터 비롯되는 굳셈을 본받기로 하자.

                                                                                                 (09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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