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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예수님을 비웃었다

by 大建 2009. 11. 7.

연중 제31 주간 토요일(루까 16,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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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복음에서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을 예수께서 하시자,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다"고 한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비웃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닐 수 있다.
바리사이들과 당시의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물려받은 전승과 지혜에 따라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즉 부자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아 부유한 것이고
가난한 이들은 하느님의 축복을 받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재물이 진정 하느님의 축복이라면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축복을 나 혼자 움켜쥐고, 또 더 많이 차지하려고 할 때 그것이 과연 축복이 될 수 있을까?
축복으로 주어진 재물 자체를 절대화하게 되면 그들 안에서 하느님은 자연히 상대화되실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물은 하느님의 축복이라는 사상에만 매달려
축복의 의미를 감소시키며 탐욕을 부리는 유다인들, 특히 바리사이들에게 하신 말씀이
바로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말씀이다.

그리고 이들은 재물뿐 아니라, 자신들의 지식, 자신들의 전통, 자신들의 율법을 절대화했기에
타인들에게 멍에를 씌우는 결과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을 비웃게 되었다".

우리 또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
우리의 지식, 우리의 재물, 우리의 전통, 우리의 법규들을 절대화할 때
이웃들에게 멍에를 씌우고, 이웃을 비웃게 된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바리사이들과 같이 종교적으로 열심한 사람들,
오늘날의 성직자, 수도자 등과 열심히 산다고 하는 평신도들에게서 자주 드러나는 현상이다.

그만큼 하느님이 아닌 종교를 절대화하고 살기 때문이다.
종교, 종교의식, 종교 교리, 종교 법규만을 절대화할 때
내 안에서 참으로 절대적이신 하느님이 들어서실 자리는 없어지며,
나와 달리 생각하고, 나와 달리 행동하고, 나와 달리 말하는 이웃을 비웃게 되고,
그들 안에 스며들어 있는 하느님의 진리를 비웃게 되고, 예수님을 비웃게 되는 것이다.

나, 나의 사고방식, 나의 규범, 나의 모든 것만이 옳다고 여기는 아집과 오만을 버리자!
이웃이 나와 다름은 틀림이 아니라,
진리가 드러나는 다른 모습이라고 열린 마음을 갖도록 하자!

하늘 아래 있는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하느님만이 절대자이시다!

                                                                                                              (98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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