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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도(道)에 관심 있으신가요?

by 大建 2009. 5. 9.

부활 제4 주간 토요일 (요한 14,7-14)

수도 생활을 해온지 꽤 되었지만 아직도 수도자로 불리우면 낯 간지러울 때가 많이 있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내가 수도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수도자란 도(道)를 닦는 사람일 터인데,
스스로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러한 맛도 멋도 나지 않는 것 같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과연 도(道)란 무엇일까?
초대 교회 시대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함께 모여 있을 때
그들은 '그 도(道)'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사도 9,2 등. 200주년 기념성서 참조)
이는 그들이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다.
이렇게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들 주위의 사람들이 사는 길과는 다른
'생명의 도'(Way of Life. 사도 2,28)를 의미했다.
후에 안티오키아에서 비로소 이 '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렸으며(사도 11,26)
점차로 처음의 '그 도를 따르는 이들'이라는 칭호는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 즉 예수님의 종교는 원래 '생명의 도'라고 불렸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그것은 예수께서 스스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음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으로써 체험하고 증거했음을 뜻하는 것이다.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추구하고 또 거기로 나아가는 "길"에 있는가?
즉 우리는 하느님의 진리를 추구하며 그 "진리" 안에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초대교회 신자들과 같이 생명의 "도"를 닦는 도인(道人)인가에 대한 답일 것이다.
추구하는 삶, 정진하는 삶이 없을 때 우리는 결코 "도사"가 될 수 없다.

수도자로 산지 20 여년, 그리스도교에 입문한지 30 여년이 되도록 여태 이 모양, 이 꼴이니
주님께서는 오늘 이렇게 나에게 호통을 치신다.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요한 14, 9)

                                                                                                                                           (95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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