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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새 하늘 새 땅

6월 13일에 바라보는 촛불

by 大建 2008. 6. 13.

지금 우리나라에서 촛불집회가 한창이다. 그 기원은 어떻게 될까?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6월 13일, 당시 의정부 조양중학교 2학년생이던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은 친구의 생일잔치를 가다 주한미군 궤도차량과 맞닥뜨렸다. 효순과 미선은 궤도차량을 피해 논두렁의 갓길로 몸을 피했으나 주한미군의 궤도장갑차는 두 여중생을 그대로 짓밟고 지나갔던 것이다. 시야가 트인 직선주로에다가 당시 도로가 오르막이어서 시속 20km로 서행하는 것이 기본규정이었던 상황에서 두 여중생이 궤도차량이 짓밟혀 즉사하였다는 것이 온 국민의 공분을 일으켰던 것이다. 더구나 주한미군은 안내표식 하나 없이 졸속으로 훈련을 추진하여 사고의 직접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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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주기를 맞은 고 신효순, 심미선 양


그러나 정작 문제는 그해 가을에 발생하였다. 미국은 가해자 미군들을 한국법정에 세우지않았고 저들 마음대로 처리하였다. 두 여중생을 압살시킨 주한미군 장갑차 선입탑승자 페르난도 니노 병장에게 무죄, 22일 운전병 마크워커 병장에게도 무죄가 선고되었다. 무죄가 선고되자마자 이들은 황급히 미국으로 배속지를 옮겼다.

국민들의 분노는 폭발하였다. 이 가운데 인터넷 네티즌 가운데 “앙마”라는 아이디를 가진 청년이 효순이, 미선이를 추모하는 촛불집회를 제안하였고 삽시간에 촛불집회라는 형태는 그해 연말의 대선정국을 뒤흔든 태풍으로 몰아쳤다. 결국 노무현 후보는 촛불의 힘을 타고 이회창 후보를 누르고 2002년 대선에서 당선될 수 있었다(http://cafe.daum.net/2MBOUT/BgY9/37 참조).

나 역시 당시 이 땅에 살고 있던 한 인간으로서 우리의 가녀린 딸들을 참혹하게 압사시키고도 무죄를 선고한 점령군 미군, 그리고 미국의 횡포에 맞서 국민적 자존심을 다시 세우기 위해기 위해 촛불집회에 나가기도 하였으며 시국미사에도 참여하였다(참고로 나는 정의구현사제단에 속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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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때 인터넷을 통하여 미군측의 불의를 고발하는 글을 열심히도 올렸었다(안타깝게도 내가 주로 글을 올리던 두 게시판은 지금 찾아볼 수가 없다...)
이 당시 여러 사람들, 특히 "미군의 처사를 받아들여야 한다" 고 주장하던 친미론자들과도 격렬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중에서도 한 가톨릭 신자, 특히 재속프란치스코회원이었던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그 당시 그들이 문제를 너무 시끄럽게 만들지 말라는 취지는 크게 두 가지에서였다. 간단히 정리하면 첫째로, 미국은 피로써 맺은 우방이다. 둘째, 미국은 강대국이므로 우리에게 유익할 것이 없다. 특히 경제적으로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 두가지였던 것 같다.

이에 대한 나의 반대 논지는 다음과 같았다. 첫째 그들이 진정한 우방이라면 상대국가와 국민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당시까지(지금도 크게 나아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들의 태도는 마치 점령군인 양 우리 나라와 국민에 대해 안하무인격이었다. 두 학생의 죽음이 사고에 의한 것이라면 진정으로 우리에게 사죄하고 관련자들을 처벌하여야 한다. 둘째 그들이 경제적, 군사적 강대국이지만 우리나라는 미국의 속국이 아니다. 당당히 주권을 이야기 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미래에 닥칠 수도 있는" 경제적 위기 때문에 할 말도 못하고 살아야 한다면 우리는 세계 안에서 계속 멸시받는 입장이 될 것이다.
특히 신앙인들에게는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뜨린" 성서의 이야기를 상기시키면서 패배주의적, 사대주의적 입장을 버릴 것을 촉구하였다.

이러한 논쟁은 당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결국 계속되는 촛불 집회가 정권을 바꾸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효순, 미선 양이 죽은지 6년이 지난 2008년 6월 13일에 미국과 관련되어 다시금 촛불집회가 크게 일어나는 것을 바라보니 정말 착잡하기 그지없다.

이번에 촛불에 불을 당기게 한 직접 원인은 미국보다는, 그 나라에 무릎을 꿇고 국민의 건강은 전혀 고려 하지 않고 조공을 가져다 바친 소위 이 나라의 대통령에게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촛불집회에 반대하는 무리들의 논거와 행태는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청 앞에서 성조기를 흔들면서 미국산 소고기의 무조건적인 수입에 반대하는 이들을 빨갱이와 "사탄의 무리"로 몰아세우고 있으며, 경제대국에 양보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 길이라고 외친다.

나는 광우병 사태로 인한 촛불시위가 반미시위로 번져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국가간의 장사에서 속알머리 없이 다 내어준 우리의 대표 장삿꾼격인 이명박 씨가 책임을 지고
재협상을 하면 그뿐이다. 장사는 장사니까 말이다.

그러나 오늘을 살아가는 사대주의적인 친미 성향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묻고 싶다.
과연 그대들이 믿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시면 어떠한 태도를 취하실까?
예수께서 그토록 주창하셨던 "하느님 나라"가 과연 경제적인 이유로 굴종적인 자세로 살아가는 나라일까?
절대 다수인 가난한 이들을 도외시한 채 1%의 부유한 이들만을 위한 정책을 펴면서 이 나라를 하느님께 바친다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실까?(실제로는 하느님이 아닌 미국에게 바치고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에 쓴 소리를 하며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으려는 대부분의 국민들이 "사탄의 무리"라면 과연 하느님의 다스리심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오늘 6월 13일을 가톨릭 교회에서는 빠도바의 안또니오 성인을 기리는 축일로 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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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오(1195 - 1231)는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17 세에 아우구스띠노 참사회에 입회하여 사제 서품을 받고 여기서 신학과 성서에 깊은 조예를 쌓았다. 그는 작은형제회의 베라르도와 동료들이 모로코에서 순교했다는 소식을 듣고 순교의 관을 쓰기 위해서 작은형제회로 옮겼다. 1221 년 성 프란치스꼬 를 만나게 되고 작은형제회 첫 신학 교수란 칭호를 받게 되며 볼로냐에서 가르치기도 하였다. 그는 이름 높은 설교가로, 박학한 학자로 또한 뛰어난 덕행가로 일생을 보냈으며 마지막 3 년동 관구 봉사자로서 형제들에게 봉사하기도 하였다. 1231년 36 세라는 짧은 나이로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였다.  교황 비오 12 세는 그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한편 안또니오 성인은 분실물을 찾도록 도와주는 성인으로 민간 신심 안에서 크게 공경받고 있다. 나도 스페인에서 유학시절 지금은 잘 기억이나지 않지만 무엇인가 잃어버리고 쩔쩔매고 있을 때 다른 수사님들이 그러한 이야기를 해주길래 "밑져야 본전이다"하는 마음으로 도와주시기를 청하는 기도를 하였는데 정말 오래 지나지 않아서 그것을 되찾고 기뻐하였던 적이 있다.

분실물을 찾는 데 크게 도움을 주시는 빠도바의 성 안또니오께서
아무쪼록 저들이 "잃어버린 신앙심"을 빨리 되찾을 수 있도록 전구해주시기를 청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