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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by 大建 2008. 8. 1.

연중 제17 주간 금요일(마테 13,5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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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그리워도 못가는 신세~~~
흘러간 유행가의 한 귀절이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특히 유년시절부터 한곳에서 20년을 살았으니 그곳이 고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향이 도시인 대부분의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게 고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마지막으로 그곳을 떠난지 한 20년 정도 지난 뒤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
살던 곳이 궁금해서 그곳에 가보았지만, 집이 없어진 것은 물론이요,
도로의 형태만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 대부분의 동네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아는 사람도 없었다.
씁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반겨주는 사람도 아는 건물도 없으니 고향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고향을 찾은 예수의 마음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물론 예수의 부모와 친척이 그곳에 살고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예언자로서의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금의환향이라는 말도 있지만, 뿌리깊은 종교적 편견은 그를 배척하게 되고
예수는 씁쓸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된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는 말을 남기셨다.
그리고 그들이 믿지 않으므로 그곳에서는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58절).
예수의 고향 사람들은 예수를 어릴 때부터 보아왔기에 잘 안다고 생각하던 사람들이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걸림돌이 되었다.
편견과 선입견이 "예언자, 스승, 메시아"로 변화된 예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한 걸림돌에 걸려 넘어져 그들은 다른 고장 사람들이 많이 누릴 수 있었던
하느님의 은총, 선물, 호의로서의 기적을 많이 체험하지 못하게 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존경, 존중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고 싶어도 베풀 수가 없게 된다.
우리의 좁은 마음이 그 사람의 호의를 왜곡시켜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가 "기적을 많이 일으키지 않으셨다"는 것은 기적을 베풀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말미암은 부정적 결과 때문에 베풀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자주 대하는 사람, 그래서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을
존경, 존중하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없는지 반성해 보도록 하자.
그 사람에 대한 편견이 우리가 그로부터 받을 수 있는 호의, 선의, 선물을
가로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 말이다.
더군다나 모든 선, 선물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한 사람을 편견을 가지고 대하는 것은 그를 무시하고 배척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다가오심을 가로막는 것임을 명심하자.

그리하여 우리 이웃들로 하여금 "고향"을 떠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8I-0S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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