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480

죽음은 사랑이다 성 금요일 그토록 인간을 사랑하시던 예수님께서, 그토록 인간을 사랑하시던 하느님께서 죽임을 당하셨다. 아니 죽음을 맞이하셨다. 사악한 인간들은 이제 다 끝났다고 신이 나서 떠든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는 "다 이루었다"라는 한 마디를 끝으로 당신의 목숨을 아버지께 돌리신다. 이제는 오직 침묵만이 흐를 뿐이다. 우리에게 최소한의 양심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이 침묵을 깨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음산한 죽음의 침묵이 아닌, 여명을 기다리는 침묵 안에서 우리는 빛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적극적으로 죽음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할 것이다. 아니 바로 그 죽음을 살아가야 한다. 예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이제는 사랑으로 채색되었기 때문이다. 2008. 3. 21.
발을 씻어야 몫을 받을 수 있다니...? 성목요일(요한 13, 1-15) 오늘부터 구원의 성삼일이 시작된다. 오늘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들 중의 한 부분을 시작한다. 오늘밤 주님의 만찬 미사에 참석함으로써, 비록 실제로 우리 발이 씻겨지지는 않을지라도, 우리 존재의 발이 씻겨지도록 한다. 발 씻음은 우리가 예수와 충만히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발은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지탱하고 서 있게 하는 중요한 신체부위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혹사당하고 또 관리도 제대로 안 되는 부위이다. 그러나 건강한 삶과 직접 관련이 되는 부분이 바로 발이다. 근래에 사람들이 족욕, 발 맛사지 등 발 관리에 얼마나 많이 신경을 쓰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예수님은 역시 시대를 앞서 가시는 분이었나 보다! ^^ 당시에 타인의 발을 씻겨주는 것은 하인.. 2008. 3. 20.
"만일 하느님께서 너희 아버지시라면..." 사순 제5 주간 수요일 한국의 대부분의 아버지가 그러하듯이 나의 아버지는 매우 엄하시고 보수적인 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아버지와 대화다운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오히려 사춘기에는 대화가 되지 않는다고 거의 대화를 끊고 살았다. 그러다가 찾게 된것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느님 아버지였다. 얼마나 기뻤는지... 다행히 하느님 께서 나를 성숙시켜 주셔서 이제 조금 아버지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지만, 아직도, 아버지와는 조금은 어색한 관계이다. 그러나, 원망이나, 미움 따위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닫힌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오신 것이 측은할 뿐이다. 어쩌랴, 늦게라도 신앙을 받아들이고 노력하는 나와 아버지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가상히 보기를 바랄 뿐. 영성 신학을 공부하다 보니, 나와 같.. 2008. 3. 12.
과거를 묻지 마세요 사순 제5 주간 월요일(요한 8,1-11) ========================= "나도 네 죄를 묻지 않겠다. 어서 돌아 가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말라"(요한 8,11).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죄를 지은 여인이 용서받았으니, 이스라엘 백성이 또 다시 용서를 받았으니 우리도 실컷 죄를 짓고 멋대로 살아보자. 갈 때까지 가보자” 하는 가르침은 아닐 것이다. 바로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과거는 흘려보내자. 과거는 묻지 않겠다. 새롭게 출발하거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얼마나 희망을 전해주는 말씀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인들 중에는 과거의 죄에 억눌려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과거의 죄에 나를 얽어매고 산들,.. 2008. 3. 10.
죽을 때까지 기다리신다! 사순 제5 주일(가해) 나의 수도원 입회 후 어머니는 신부전증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그러나 그것은 미봉책이었다. 괜찮은 듯이 사신 것은 불과 4-5년... 그후로 계속 당뇨와 통풍으로 고생을 하셨다. 특히 통풍으로 점점 걷지를 못하시더니 결국에는 누워서 지내는 신세가 되셨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1998년 당뇨의 합병증으로 마지막 3일을 혼수상태에 계시다가 돌아가셨다. 동생 내외는 출근을 하고 아버찌께서 잠간 방을 비우신 사이 혼수상태에 계셨기에 유언 한 마디 남기지도 못하시고, 홀로 돌아가셨다. 나는 전 날에 혼수상태가 오래갈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도원에 귀원을 하였기에 아무도 그분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뵙고 귀원하는 길에 차라리 혼수상태가 길어져서 다른 가족 고생시키.. 2008. 3. 9.
점진적인 신앙 사순 제4 주일(가해) 내 신앙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변해서 정말 열심한 신앙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즐겁고, 정말로 하느님 보시기에 그렇게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게 느닷없이 변할 수는 없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을 때가 다 되었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가! 물론 교회 역사 안에는 갑자기 변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리스도 신자들을 박해했던 사울이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갑자가 변하게 된다. 부유한 포목상인의 아들 아씨시의 프란치스꼬는 가사가 되기 위하여 전투에 나아가던 중 넋이 빠져 돌아온 후 회개 생활을 시작했다. 다른 성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우연한 계기로 하느님을 체험하게 되고, 그 체험이 일생을 바꿔놓은 계기가 된.. 2008.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