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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함께 존재하는 사랑

by 大建 2011. 7. 22.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기념일(요한 20,1-2.11-18)


복음서는 막달레나를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사람이라고 우리에게 알려준다(마르 16,9; 루가 8,2).

일곱 마귀가 들린 현상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우리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 "일곱 마귀"를 떨어져 나가게 해주심으로서
막달레나가 새로운 삶을 찾았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다른 이들로부터 "부정한 이"로 손가락질 받고 배척받고 따돌림받던 삶에서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있었으리라.

그러한 크나큰 은총에 감사드리며, 그 사랑에 보답하며 사랑을 돌려드리며 살던 이가 막달레나였다.
그러한 사랑이 그녀로 하여금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무덤에 가게" 하였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게 한다.
그 어떤 여인이 "아직도 어두울 때에" 무덤에 가고자 하고, 또 실제로 갈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막달레나는 자신을 새 생명 안에 태어나게 해주신 주님의 시신을 그대로 방치해 둘 수 없었다.
"향료를 사서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리고자 했다"(마르 16,1).
그렇게 라도 하는 것이 당신을 사랑해주신 분, 자기가 열렬히 사랑을 바쳐드리고자 한 분의
 마지막 길에 해드려야 할 일이었다.

그렇게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의 결과로 그녀는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뵙는 영광을 누렸다.
부활하신 주님의 영광 안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녀의 사랑에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도 그렇게 보답하신 것이었다.

우리도 하느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아무리 해도 부족한 우리 사랑을 불태워야 한다.

뜨거운 사랑만이 영광 중에 계신 그분과 함께 하게 할 수 있다.


한편 주님께서는 막달레나에게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Noli me tangere)" 하신다.

그분은 "아버지께 올라가셔야만" 한다. 창조 이전부터 누리던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가셔야 한다.
그러나 막달레나는 지상에 머물러 계시기를 바랬을 것이다.

"나를 더 이상 붙들지 마라". 이 말씀은 막달레나의 사랑을 정화시켜 주시는 말씀이다.

집착을 버리고, 그분이 스스로의 모습과 위치를 되찾으시도록 해드리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어떠한 경우에든 인간이 타인을 사랑한다고 할 때,
내 뜻대로 휘두르고자, 조종하고자 하면, 그래서 내가 사랑하는 이가 그 자신일 수 없게 만든다면
그것은 이미 순수한 사랑이기를 그치는 것이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에게 집착하지 않고 "함께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에게 참된 사랑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로 하자.
그리고 그 사랑을 살아가기로 하자.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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