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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여행

Serra 피정의집

by 大建 201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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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늦게 일어나 쉬고 있으려니 로스엔젤레스에서 신자 두분이 오셨다.

다짜고짜 짐을 챙겨 LA로 가자고 한다.
숙소가 LA 시내에서 벗어나 있어 당신들이 안내하기에 불편하다는 것이다. 하긴 그렇다.
매번 이쪽으로 왕복을 해야 하니...

그래서 수녀님들께 사정을 이야기 하고 숙소를 LA 시내에 있는 3회원 이 뽈리나(원래 본명은 아뽈로니아인 듯 하지만 이곳에서는 모두 뽈리나로 부른다) 씨 댁으로 옮기기로 하였다.
뽈리나 씨 집은 LA의 한인촌에서 가까운 곳이다.

한인촌의 모습은 많이 찍지 않았다

과연 한인촌에서는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는 작은 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기 사는 교민들이야 불편한 것이 없어 좋겠지만 이것이 과연 좋기만 한 듯 싶지는 않고, 일부 교민들도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에 기회가 있을 때 다시 이야기하기로 한다.

숙소를 옮기고 LA 루케치오 보나돈나 형제회 회장인 염 로사 씨, 그리고 부회장인 뽈리나 씨와 함께 온 몇 분과 저녁 식사를 한다. LA에 도착한 후 양식은 먹어보지를 못했다. 아니 먹어 볼 기회나 있을지 모르겠다...^^

다음 날 아침 성 바실리오 한인본당에서 주임신부님과 함께 미사를 봉헌한 후, 몇분과 함께 Serra 피정의집으로 향한다.
LA에서 Santa Monica를 지나서 그 유명한 Malibu 해수욕장을 뒤로 하고 부유층 저택이 모여 있는 산으로 올라가면 정상에 Serra 피정의집이 자리 잡고 있다.


Serra 피정의집은 미국 서부 복음화의 영웅 복자 Junipero Serra(주니페로 세라; 원래 스페인어식 발음은 후니뻬로 쎄라이지만 앞으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대로 주니페로 세라로 쓰기로 한다)를 기념하여 세운 피정의 집이며 작은형제회에 의해서 운영되고 있다.

주니페로 세라는 1713년 에스빠냐 마요르카 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세례명은 Miguel Jose Serra였고, 그 집안은 겸손한 농부의 가정이었다.
Miguel이 15세가 되던 해에 그는 Nuestra Senora de los Angeles 수도원에서 프란치스칸 수련착복을 하였다.
1713년 Miguel은 서원을 하였고 그 때 Junipero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31년부터 1734년까지 Junipero는 San Francisco Palma 수도원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사제가 된 후 초기 몇 년간 그는 학생 프란치스칸들에게 철학을 가르치는 일을 하였다.
1742년 Junipero 형제는 Majorca 대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이 전통있는 대학교에서 교수직을 맡게 되었다.

1749년 그가 25세 되던 해에 그는 새로운 세계를 복음화하라는 소명을 느끼게 되었다.
1749년 4월 13일 Francisco Palou와 함께 Junipero는 Majorca를 떠나 멕시코를 향하였다.
10월 18일 그는 푸에르토리코의 San Juan에 도착하였다.
거기에서부터 그는 멕시코까지 여정을 계속하였다. 그때 그가 타고 가던 배가 태풍을 만났다.
다행히도 그는 Vera Cruz에 도착하여 거기서부터 멕시코시를 향해 갔다.
그는 Jalpan에 파견되었고, 이 때 집중적으로 선교에 전력을 기울이고 나서 San Saba de la Santa Cruz (오늘날은 Texas의 Menard County임)에서의 새로운 선교 임무를 준비하기 위해 멕시코시의 선교학교로 돌아갔다.

1767년 Junipero는 캘리포니아의 Loreto로 파견되었다.
캘리포니아에 대한 스페인의 식민지배 야욕 때문에 Junipero는 북쪽 San Diego로의 여정을 떠나 1769년에 도착하였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Junipero는 현재의 캘리포니아 주에 첫 번째 선교 거점을 세우는 데 성공하였다. 선교의 여정은 북쪽 Monterey쪽까지 계속되었다.

1771년 8월 24일 Junipero는 San Carlos Borromeo에 두 번째 선교 거점(Mission)을 세웠다. 이 선교거점은 캘리포니아에서 Junipero가 선교를 하는 데 있어서 본부로서의 역할을 해 주었다. 그 후에 San Antonio (1771), San Gabriel (1771) and San Luis Obispo (1772)에 다른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1773년 Junipero는 멕시코로 돌아가 총독에게 새로운 선교를 위해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멕시코시에 도착했을 때 그는 캘리포니아 선교에 관한 상세한 보고서를 총독에게 제출했을 뿐 아니라, "representacion"이라는 캘리포니아에 관한 최초의 법적인 문서의 초고를 썼다.

1774년 그는 Carmel Mission에 되돌아와서 계속해서 선교사로서 그곳에 번창하는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열심히 일하였다. 이 때 다시 새로운 선교 거점들이 세워졌다: San Francisco (1776), San Juan Capistrano (1776), Santa Clara (1777), San Buenaventura (1782).

Junipero의 건강이 1784년에 많이 악화되었다. 그 해 여름 그는 결핵과 오래 누적된 과로로 고통을 겪었다.
그는 1784년 8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그 때 그의 나이는 70세였다. 그는 수천 킬로미터를 걸어서 여행하였기에 온 피로로 탈진되었던 것이다.

그는 35년간 선교사로서의 삶을 살았고 Carmel Mission의 성당 묘지에 묻혔다.

1988년 9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 프란치스칸 복음 선포자를 복자품에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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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erra의 동상들

복자 Serra의 지칠 줄 몰랐던 선교 열정을 기억하며 잠시 숙연하게 피정의집 성당에서 기도를 한 후 우리는 그곳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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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정의 집 성당 내,외부


그의 선교지가 21곳이나 된다는 말에 일면 놀라면서도 내심 모두 가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결국 몇 군데 밖에 가보지 못하고 귀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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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처에 무리지어 피어 있는 미국벌노랑이나무. 한국에서 본 것보다 꽃도, 나무도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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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수리 한 마리가 먹이를 찾아 한가로이 하늘을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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