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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작은형제회

샌디에고 1

by 大建 2010.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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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뽈리나 씨 차를 타고 샌디에고로 향한다. 역시 염 회장님과 율리아 씨가 동행한다.

샌디에고형제회의 송 베드로 회장 댁에 나를 내려놓고는 세분은 바로 LA로 향한다.
기차나 버스를 타고 올 수 있게 해주면 그만인데 저렇게까지 수고를 해주시니 정말 송구스럽다.

송 회장님과 잠시 담소를 나눈 다음 샌디에고형제회의 주 미셸 자매의 안내를 받아 샌디에고를 둘러본다.

먼저 샌디에고 미션으로 향하였다.
마침 미사 중이라 성당은 들어갈 수가 없었고 외부만 둘러보기로 한다.

성당의 외부

미션 내 작은 성당


"세라 피정의집"에서 기술한 바와 마찬가지로, 이 미션은 복자 주니페로 세라가 설립한 21개의 미션 중에서 1769년에 최초로 세워진 곳이다.
첫 미션의 주보성인은 알칼라의 성 디에고로 정한 것을 보면 주니페로는 디에고 성인에 대한 특별한 신심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디에고(1400 - 1463)는 에스빠냐 산 니꼴라스 태생으로 젊은 시절 3회에 들어가 3회 지도 신부의 지도를 받아 은둔 생활을 하였다.

후에 아이리자파에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의 신앙 생활의 통찰력 때문에 많은 신학자들을 매료시켰다.

1442년 새로 발견된 카나리아 섬에 파견되었으며, 문지기 수사로 있으면서 아픈 동료와 거지들을 극진히 돌보았으며 성모님에 대한 신심을 널리 전하였다. 또한 병자들을 치유하고 부족한 빵을 늘리는 등 많은 기적을 행하면서 애덕과 신심에 있어 높은 성덕을 인정받아 보나벤투라 수도원의 수도원장이 되었다.
배우지 못한 그가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된 사실은 놀라운 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한 번의 임기를 채우고 그만두었다.
그는 여생동안을 스페인의 각 수도원을 다니며 하찮은 일을 하면서 지냈다.

성 요한 까페스트라노가 총봉사자로 재직하는 동안 1450 년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의 시성식 때문에 그를 로마로 불렀다.
예식에 참가한 형제들 사이에 전염병이 생겼을 때 그는 희생자들을 보살피느라 자기 시간을 송두리째 바치기도 하였다.
1463년 11월 12일 1463년 십자가를 굳게 쥐고 세상을 떠났다.
사후 그의 유해는 에스빠냐로 이장 되었으며 썩지 않은 채로 보존되고 있다.
디에고는 작은형제회 평형제들의 주보로 선정되었다. 1588년 식스또 5 세가 시성하였다.

주니페로가 설립한 바로 이 첫 미션의 주보성인의 이름을 다서 후일 미국 서부에서 군사, 문화적으로 주요도시 중의 하나가 된 이 도시는 샌디에고로 불리게 된 것이다.

미사 중이라 내부를 완전히 둘러볼 수는 없었지만 주니뻬로를 비롯한 미국 서부를 복음화시킨 작은형제들의 발자취가 배어 있는 미션에서 잠시 숙연한 마음으로 기도를 한 후 시내로 향하였다.

시내 관광을 한 후 다음 날 LA로 향하는 길에 또 다른 미션 산 후안 까페스트라노에 들르게 된다.
시기적으로 순서가 바뀌지만 이어서 이 미션에 대해 적기로 한다.

0123

성 요한 카페스트라노 미션은 주니페로 세라가 1776년에 7일곱번째로 세운 미션이다.
샌 디에고 미션에 비해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으며, 이미 이 지역의 관광명소로 자리잡은 듯 하다.
이 미션이 특별히 더 유명해진 것은 봄철이면 엄청난 수의 제비들이 날아와 머물다 가는 곳이기에 "제비들의 선교지"라고 불리며, 제비들이 오는 철이면 방송 뉴스 등에도 자주 나오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시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 내부에는 제비들의 집이 더러 눈에 띄고, 그 배설물들의 자국들도 많이 보인다.

성 요한 카페스트라노는 1386년 이탈리아의 카페스트라노에서 태어났다.


페루지아와 나폴리에서 수학하고 유명한 판사가 되었다.
백성들의 소요 중에 포로가 되었다가 기적적으로 풀려나오고  깊은 신앙적 위기를 겪고 나서 작은형제회에 입회하기로 결심했다.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노와 절친한 사이로서 그와 함께 작은형제회의 쇄신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평화를 이루는 이로서, 이웃사랑의 사도로서 온 유럽을 두루 다니면서 설교했다.

이단자를 대적하고 회교도에 대항할 십자군을 독려하였으며 그 중에 특히 1456년 벨그라드의 승리에는 그의 공로가 컸다.
바쁜 생활 중에서도 많은 저서들을 남겼다.
1456년 10월 23일 일록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행방불명되었다.




정원의 연못에 핀 수련


01

정원에서 만난 팔랑나비. 한국에는 없는 종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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