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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너 어디 있느냐?

by 大建 2012. 11. 14.

연중 제32 주간 수요일(루까 17,11-19)

 

오늘 복음의 내용은 일명 한센병이라고도 일컬어지는 병을 앓던 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 치유의 은혜를 받았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아홉 사람은 그대로 떠나가고 한 사람만 돌아와서 주님께 감사드렸다고 한다.

먼저, 그 아홉 사람은 선택받은 유다민족에 속한 사람들이었다.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면 그 어느 민족보다도 하느님을 섬겨야 하고, 감사를 드려야 하며, 율법을 지켜야 한다. 즉, 이방인보다 모든 면에서 더 나은 점이 있어야 하는데 아홉 사람이 이방인에 비해 나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새 이스라엘로서 선택받은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는 데 있어서 더 나아야 한다. 과연 우리는 그렇게 감사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가?

아홉 명의 유다인 나환자들은 치유받은 후에 전혀 감사하지 않았다. 이러한 인간의 배은망덕이 또 있을까? 그들은 정말 간절히 청했을 것이다. 복음은 그들이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소리를 높여 말하였다"고 전한다. 그리고 원하던대로 치유의 은혜를 받았다. 그러나 아홉 사람은 전혀 감사드리지 않고 떠나가 버렸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찾으셨겠는가?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는 주님의 물으심은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에게 던지시는 창조주 하느님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뜻을 배신하여 죄를 짓고 숨어버리는 인간, 그리고 치유의 은총에도 감사드리지 않고 배은망덕한 모습을 보이는 인간에게 하느님께서는 똑같이 물으시며 찾으신다. "너 어디 있느냐?" 그러나 이러한 찾으심은 그를 벌하기 위함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려는 것, 그래서 우리가 개과천선하게 하시려는 것, 즉 우리의 구원을 바라시는 것이다. 그렇기에 감사드리기 위해 돌아온 사마리아인에게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지 않는가!

사마리아인은 유다인들로부터 심한 혐오를 받던 이방인이다. 그러던 그가 병고침 받았음을 깨닫고는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 왔다고 한다. 감사드릴 줄 알았던 그에게 주님께서는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신다. 단지 육체의 치유만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영혼 또한 치유되었다는 것, 즉 전인적인 구원이 이루어졌음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우리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를 청하고 많은 경우에 바라던 은혜를 받게 된다. 그러나 그 후에 얼마나 감사드리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보기로 하자. 항상 함께 하시며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온전한 구원의 은총 안에서 살아가는지, 혹은 선물을 주신 분은 도외시하고 받은 선물에만 매달려 살아가지는 않는지... 하느님께서는 오늘도 그러한 우리를 애타게 찾으시며 "너 어디 있느냐?" 하신다!

                                                                                                                                                            (27U0S1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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