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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사랑은 율법의 완성

by 大建 2011. 3. 30.

사순 제3 주간 수요일(마테 5,17-19)

 


우리는 태어나서 출생 신고를 하고 죽으면 사망 신고를 해야하듯이, 우리가 사회에 속하여 살아가는 한 처음부터 끝까지 법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게 되어 있다.  살다보면 불의한 법도 만나게 되고, 또는 불의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를 어느 정도 속박하는 법도 만나게 된다. 또한 신앙인들은 이러한 사회의 법(實定法)외에도 하느님께서 주신 계명, 율법 등 즉(神法)도 지키면서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법, 규정들을 대하며 우리는 간혹 법이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실정법이나 신법이나 그 정신은 모두 같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사회를 조화롭게 유지시키기 위한 것이며,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정의가 완전히 서는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가 오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예언서들을 폐지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마라.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17) 하신다. 율법을 완성하신다는 말씀이 무엇일까? 그 의미를 잘 알아듣기 위해서는 바오로 사도께서 쓰신 로마서의 말씀들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요한 3,16)  당신의 아들을 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대속) 수난당하게 하심으로써 이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신앙인들이 죄의 권세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이제 신앙인들은 성령을 따라 살기만 하면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다. "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수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로마 8:3-4).

이어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한 것입니다"(로마 13,8)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율법과 사랑을 반대되는 것으로 생각하고는 한다. 우리는 율법은 부정적인 것(...하지 말라)이며, 사랑은 긍정적인 것(...을 하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사랑과 율법은 다른 것이 아니다. 이는 율법은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며, 율법의 정신은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율법의 각 규정들을 무시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율법의 각 조항은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체적인 규정들이 없으면 사랑은 추상적이 되고 실천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사랑을 "율법의 끝"이라고 하지 않고 "율법의 완성"이라고 부르고 있다. 사랑과 율법의 각 조항들은 같은 것이며 결코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사랑을 실천하려면 율법이 필요하고, 율법이 실천되려면 사랑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가 소극적으로 율법의 법조문들에 얽매이지 않고, 성령에 따라 보다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자세로서  우리의 삶을 꾸려나갈 때 우리는 율법의 노예가 아니라 당당히 "율법의 주인"(마테 12,8 참조)으로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며, 또한 율법을 완성하게 되는 것이며 소위 "법이 없어도 살 사람"이 되는 것이다.  
                                                                                                                                                                              (17O1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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