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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에파타

by 大建 2012. 2. 10.

연중 제5 주간 금요일(마르 7,31-37)

벌써 오래전의 일이 되어버렸지만, 처음 유학가서 두 세 달 정도는 정말 악몽과 같은 시간들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을 내가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고, 내가 더듬거리며 하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고...
같이 사시던 수사님들이 인내심을 지니고 대해주기는 하셨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는 것이라 때로는 완전히 왕따 당하는 기분, 사람 취급을 못받는다는 기분으로 살게 되고, 정말 짐싸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때가 많았다.
정말 귀먹은 반벙어리가 이러한 것이구나 하는 것, 장애인의 서러움을 뼈저리게 체험한 시기였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귀먹고 말 더듬는 이를 고쳐주신다. 그것도, 다른 때와는 달리,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시는 방법으로 자상하게 치유해주시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하늘을 우러러 한숨을 내쉬신 다음, 그에게 “에파타!” 곧 “열려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역시 당신 "말씀"으로 치유를 완성하시는 것이다.

오늘 복음을 단순히 육체적 장애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으로 알아들으면 안될 것이다. 그분께서 행하신 모든 기적이 그렇듯이, 오늘의 기적도 육체적인 장애를 치유하심과 동시에 우리 모구, 우리 각자가 지니고 있는 내면적, 영혼의 장애를 치유해주시는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면서 겉으로는 그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도 마음의 귀를 닫아버리고, 겉으로는 대화를 나누는 척 하면서도 속마음은 감추고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는 진정 내면으로 귀머거리요, 반벙어리, 말더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흔히 내 마음이 닫혀 있음을 생각하지 않거나 인정하지 않고 상대방의 탓 대문에 관계 형성이 안된다고 주장한다. 나 자신이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이며 완고한 마음과 편향된 사고로 삐뚤어져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의 귀가 제대로 뚫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눈이 제대로 열리기만 한다면, 우리의 혀가 제대로 풀리기만 한다면 세상만사가 다 기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하루하루의 삶 전체가 기적이 될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체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스스로의 장애됨을 솔직이 인정하고 주님께 우리의 귀와 입을,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도록, 우리에게도 "에파타"하고 말씀하시며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도록 청하자.
                                                                                                                                                                                      (2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