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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민주적이신 하느님과 독재적인 마귀

by 大建 2015. 7. 7.

연중 제14 주간 화요일(마테 9,32-38)


사람들이 마귀 들려 말못하는 사람 하나를 예수님께 데려왔다.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 그러자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은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아낸다.” 하였다.


1.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억울한 소리를 더러 듣는다. 그런데 대개 그런 소리를 하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미성숙한 사람이거나 어떤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일 경우가 참 많이 있다. 그래서 차라리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이 평화를 위해서 유익할 경우가 많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바리사이들이 그러한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바리사이들은 예수께 작정을 하고 시비를 걸고자 달려든다. 그러나 유치하기 짝이 없다. 마귀를 쫓아낸 것이 시비의 내용이 될 수 없는 것임에도 시비를 걸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예수님이 마귀의 두목이라는 논리를 사용할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저희들도 알 터인데 말이다. 마귀가 마귀를 쫓아내는 일이 있을 수 없으니 자연히 그것은 모든 좋은 일을 이루시는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고 자가당착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시비꾼들이다.


2. "마귀가 쫓겨나자, 말못하는 이가 말을 하였다"고 한다. 말을 못하던 이가 말을 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동네 잔치라도 벌여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사람은 원래 말을 하도록 창조된 존재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사람이 말을 못하게 하고, 말을 못듣게 함으로써 소통을 가로 막는 마귀들이 많이 있다. 하느님께서는 대화-기도로써 인간과 소통을 하고자 하지만, 청와대에 있는 인간같은 마귀들은 일방적으로 상대방의 입을 막아버리고 자기 말만 듣게 한다. 하느님은 민주적이시지만 마귀는 독재적이라는 말이다. 마귀같은 종교지도자들은 원래 소통을 싫어한다. 자신들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입과 귀를 막아버리지만, 그들이 전하는 것은 "말"이 아닌 "텅빈 소리"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고 따라서 그들은 마귀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존재들일 뿐이다.


3. 민주적이신 하느님은 강압적으로 아무에게나 당신 밭의 일꾼이 되도록 시키지 않으신다. 자유의지로 봉사하는 사람(자원봉사자) 들이 소문을 듣고 당신 밭에 와서 일을 함으로써 "하느님 나라"를 소통시키는 일꾼이 되기를 원하신다. 이것이 예수께서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 하고 구태여 제자들에게 부탁하시는 이유이다.하느님과 우리가, 세상 사람들이 서로 소통되게 해야할 책무가 우리에게 주어졌다. 어서 자원봉사자로 등록하자~~~!


4. 그리고 우리 또한 하느님께 우리가 드리는 말씀을 듣도록 강요만 하고 그분의 말씀은 들으려고 하지 않은 채 마귀 노릇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 보도록 하자! ^^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