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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철부지의 단순성

by 大建 2012. 7. 18.

연중 제15 주간 수요일(마테 11,25-27)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철부지는 어떤 사람들일까? 가장 좋은 예가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가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성 프란치스꼬 대축일 미사 복음은 오늘 복음과 같은 내용이다. 그만큼 프란치스꼬는 철부지처럼 하느님 아버지께 의탁하며 살았고, 하느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명하며 한치의 의심도 없이 받아들이고 사신 분이다.



"그가 주님께 찬미의 노래를 부르면서 어떤 숲 속을 지나갈 때였다. 느닷없이 강도들이 그에게 달려들었다. 네 놈이 누구냐고 그들이 사납게 물었을 때, 하느님의 사람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 '나는 위대하신 하느님의 사신(使臣)이오. 무슨 일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그를 두들겨 패고는 눈이 쌓인 구덩이에다 집어던지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하느님의 이 촌스러운 사신아, 거기 누워 있거라.!' "(1첼 16)


프란치스꼬와 같은 철부지의  이러한 단순성은 또한 겸손의 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프란치스꼬는 모든 이의 스승이신 분(하느님)으로부터 깊은 비밀들을 배웠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작은 형제여서 자기보다 학식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구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혹은 무슨 방법으로 하느님께 당신의 뜻에 따라 더욱 완전히 봉사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 했다. 완덕의 극치에 닿는 가장 영웅적인 방법으로서, 모든 사람들 - 유식하든 무식하든, 젊었든 늙었든 간에 - 에게 묻는 것이 살아 있는 한 그의 가장 큰 갈망이었으며 그의 철학의 종합이었던 것이다
'형제들이여, 당신들은 이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어느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시오? 즉, 내가 나의 모든 시간을 기도하는 데 더 전념해야겠소? 아니면 돌아다니며 설교를 해야겠소?'
그는 형제 두 사람을 뽑아 그들을 실베스테르 형제와 성녀 글라라에게 보내어 함께 기도하여 하느님의 뜻을 알아내도록 해 달라고 말하였다. 성령의 영감에 의해 실베스테르 형제와 성녀 글라라는 둘 다 같은 결론에 이르렀다. 프란치스꼬가 그리스도의 사자로서 설교하기 위하여 나가야 한다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이었다."(대전기 12,2)

한편 당시 십자군 전쟁의 참상 앞에서 "프란치스꼬는 자기 동료에게 말했다 : '주께서 나에게 만일 그 날에 교전을 벌리면 십자군이 불리하리라는 것을 보여 주셨소. 내가 그들에게 이 말을 하면 나는 바보 취급을 받을 것이고, 가만히 있자니 양심을 속일 수 없고! 이러니 어쩌면 좋지요?' 그의 동료가 다음과 같이 말하며 대답하였다 : '사부님, 당신은 어차피 바보로 여겨져 있고, 그게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니니 사람들의 판단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양심의 짐을 덜으시오. 그리고 사람보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시오.'"(2첼 30) 난형난제라고 했던가? 스승인 프란치스꼬만큼 제자 일루미나또 역시 단순한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이처럼 단순성을 지닌 철부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전대적인 신뢰를 두고 그분의 뜻을 구하려고 하지만, 이 조차도 자신만의 기도로써가 아니라 이웃 동료의 조언을 구할 정도로 겸손하다. 자신의 판단이 그를 수도 있음을 잘 알기 때문에 동료 신앙인들의 힘을 빌어 확실한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내 생각은 틀림없다"는 오만함으로 자주 다른 이들과 마찰을 빚고, 그들을 무시함으로써 관계 형성에 문제를 일으킨다. 그러나 하느님만이 절대적이신 분임을 인식하는 "철부지"들은 그리스도와 그분의 동료 인간들 앞에 겸손되이 지혜를 구하는 자세로써 "아버지의 선하신 뜻"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우리 모두 이러한 철부지가 됨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드리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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