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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by 大建 2012. 12. 11.

대림 제2 주간 화요일(마테 18,12-14)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사람일지라도 하느님 보시기에는 소중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각자가 하느님 닮은 모습(模像)으로 창조되었으며, 각자가 고유한 인격을 지니는, 그래서 누구나 천부적인 존엄성을 지니는 존재이다.  그렇기에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느님께서 각 인격체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은 동일한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로마 2,11).

그렇게 사랑해주시는 한 영혼이 당신의 품, 당신의 울타리를 벗어났을 때 겪으실 아픔은 따라서 아흔아홉의 영혼이 무사한 것으로 위로가 될 수 없는 성격임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 인간도 자식과 관련하여 "열 손가락 깨물어 아프지 않은 손가락 없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가!

어제 올린 글 "대림절에 체험하는 성주간"(http://adoro.tistory.com/2105)에도 썼듯이 목자로서의 아픔, 안타까움을 요즈음 체험하고 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반복하지만 나는 나를 고발한 신자를 미워하지 않으며 원망하거나 비난하지 않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오히려 나는 그렇게 한 사람의  영혼이 측은할 뿐이다. 다만 사제의 강론을 문제삼아 세속 법정에 고발하는 신자의 영혼, 그 믿음의 수준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다. 그래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하느님께서 그(혹은 그녀)의 영혼을 보살펴 주시기를, 그의 무지를 깨어버리시고 신앙 안에서 세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지혜를 주시기를 청하면서...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나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실 것이라 믿는다. 그것이 하느님의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사랑이 그러한 것일진대 우리는 세파에 시달리면서, 그리고 이웃들에게서 상처를 입고, 모욕을 당할 때도 그분에게서 위로를 받을 수가 있다. 오늘 제1 독서에서 예언자가 "위로하여라,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하고 외치는 까닭이다. "그분께서는 목자처럼 새끼 양들을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이사 40,11).

아버지이요, 목자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자. 그러한 사랑으로 우리를 품어 안으시고 우리 각자를 찾으러 오시는 주님께 달려나가기로 하자. 이제는 목자가 이끄는 길을 벗어나고 양떼(교회)로부터 떨어져 나가 독단적으로 행동하여 방황하는 일이 없이 그분 품안에서만 위로를 찾기로 하자. 그리고 양떼인 교회의 형제 자매들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는 삶을 살도록 하자!


버림받은 나무의자에 담쟁이만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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