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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내가 바라는 것은

by 大建 2014. 7. 18.

연중 제15 주간 금요일(마테 12,1-8)


오늘 트위터라는 인터넷 공간에서 어떤 여자가 "사람 같지 않은 유족들은 아직도 천하에 제 자식만 억울하게 죽은 양 쌩 난리부르스를 추고 있다." 라고 쓴  글을 보고서 참으로 경악스러웠다. 또 어제는 서울 광화문에서 유가족들의 농성장에 보수단체 회원들이 난입을 하려다가 제지를 당했다고 한다.


이 사회가 부끄러움만을 잃은 사회가 아니라, 이제는 측은지심도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자기들의 자식이 그렇게 수상한 이유로 죽었고 그 원인이 100일이 다가오도록 밝혀지지 않는다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자신들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입장에서 한 번이라고 생각해본다면 그렇게 잔인한 말과 행동을 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과연 저들은 무엇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가고 있을까? 사회의 안녕? 그것이 중요한 가치일 수 있다. 그러나 개인의 생명이 국가에 의해서 보장받지 못하고 무조건 침묵만을 강요당하는 사회가 그 자체로 안녕한 사회일 수 있을까?

또 인터넷에 그런 글을 올린 인간이나 농성장에 난입하려고 한 인간들은 어떤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사주를 받아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이 세상에서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말들을 많이 한다. 그러나 인간이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인데, 자신의 목숨, 혹은 자식을 목숨을 잃은 다음에는 그러한 재물도 다 쓸데 없는 것이 되어버리지 않겠는가! 그러니 유족들이 소위 "시체 장사"를 한다고 하는 인간 말종들의 발언은 그야말로 인간을 이해하지 못하는데서 나오는 무지의 소치이며,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러한 쓰레기 짓을 사주하는 인간들이나 돈을 받고 그러한 경거망동을 하는 저급한 부류의 자신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늘 주님께서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 하신 말씀이 무슨 뜻인지 너희가 알았더라면, 죄 없는 이들을 단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다. 바로 오늘날의 저 무자비한 인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렇게만 생각하면서, 나와는 관계없는 말씀이겠거니 하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오산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시듯이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오해와 무지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이웃을 쉽게 단죄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위에서 말한 무자비한 글을 올린 사람은 Esther라는 그리스도교식 이름을 아이디로 사용하는 개신교 신자였다!). 


성경 도처에서 나타나는 하느님의 뜻은 우리가 훌륭한 종교인, 경건한 신앙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닮아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일년 365일을 빼놓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미사 참례를 한다해도 인생을 허비할 뿐인 것이다!


사랑이신 하느님(1요한 4,16)께서 진정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우리가 당신 닮은(창세 1,27) 원래의 존재로 돌아가는 것, 우리의 본질을 찾아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는 하느님 닮은 모습, 당신의 모상(Imago Dei)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명심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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