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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

by 大建 2014. 9. 9.

연중 제23 주간 화요일(루까 6,12-19)

1. 남들이 보기에 그럴 듯한 수도자연 하면서 살아왔지만, 사실 무엇 하나 주님을 제대로 따른 것이 없는 한심스러운 제자일 뿐이라는 것을 고백하여야 하겠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다시 태어나고 서원을 하여 수도자로서의 봉헌생활을 해왔다고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봉헌이라고 하기 보다는 인도하심에 겨우 겨우 이끌려 온 삶이 아닌가 생각된다.
무릇 제자는 스승의 일거수 일투족을 따르고 거기서 깨우침을 얻는 사람이거늘, 나는 그분의 행적을 제대로 따른 적이 한 번도 없는 것 같아 오늘따라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2.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밤을 새며 기도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여러 가지 길고 짧은 피정을 해왔지만 밤을 새우고 기도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말이다. 기억하기로는 기껏 두 세 시간 정도 기도해 본 것이 최고다.

3. 도대체 무슨 기도를 그리 오래 하셨을까? 아버지 하느님께 드릴 말씀이 그리도 많았다는 말인가?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는 말로 미루어 보아 사도라고 불리게 될 제자들을 뽑기 위한 기도가 아니었겠는가 짐작해볼 수 있다.
이미 마음에 두고 계셨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아버지 앞에 당신의 소견을 풀어놓으시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셨을 것이다. 때로는 자상하게, 또 때로는 기특하게 여기시는 눈빛으로, 혹은 답답해 하시며 안타까워 하는 마음으로 담아두었던 제자들의 면모에 대해 말씀드리며 아버지의 뜻을 청하였을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원대한 구원 계획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어야 할 사람들을 알려주셨을 것이다.

4. 베드로와 같이 단순 무지한 사람이 으뜸이 되어야 할 것이고, 유다와 같은 회의주의자 혹은 기회주의자도 사도들 중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는 아버지의 뜻에 조금은 당혹스러우셨을 수도 있고, 그래서 깊은 침묵 속에 아버지의 뜻을 숙고하는 묵상, 관상도 하셨을 것이다.

5. 기도문을 외우는 것, 기도문을 의미없이 외우고 마는 것이 기도의 전부가 아니다. 예수께서 묵주의 기도를 수 백단 바치느라고 밤을 새우신 것이 아니듯이 말이다. 기도는 우리가 일상 안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 체험한 것을 하느님 앞에 풀어놓는 것이요, 그러한 것을 통하여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는 시간이다. 따라서 때로는 내 이성과, 감성, 기억력을 통해서 그분과 대화를 하고, 때로는 깊은 침묵 속에, 대부분 칠흑과 같은 어두움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찾고 바라보는 시간인 것이다. 

6. 따라서 기도 중에 내가 당신의 사랑받는 자녀임을 확인하게 되면 기쁨과 열정이 솟구칠 수도 있고, 반대로 아버지의 마음을 상해 드린 것을 깨닫게 되거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느낌이 들 때면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고뇌에 휩싸일 수도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기도 시간을 차지하는 깊은 침묵 속에서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독을 느끼면서도 그분의 현존에 의심을 품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할 것이며,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오히려 평온을 되찾게 되기도 할 것이다.

7. 예수님은 이렇게 온 마음, 온 존재를 다하여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고 그분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려 노력하셨고, 그 결과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는 것이다. 이렇게 밤을 새며 기도해도 우리 인생은 실패할 수 있다. 십자가는 사실 실패의 표지가 아니던가! 그러한 있을 수 있는 실패도 받아들여야 함을 아셨기에 예수님은 "땀이 핏방울처럼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로 겟세마니에서 고뇌에 찬 기도를 바치셨던 것이다.

8. 이렇듯, 기도는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임마누엘이신 하느님과 함께 함의 표지요, 그렇듯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응답의 자세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처럼 밤을 새워 기도하지는 못할지라도, 의미없이 손가락이나 움직이고 입을 놀리기만 하는 형식적인 기도는 이제 지양하기로 하자. 내가 급할 때는 모든 것을 다 바칠 듯이 청을 드리다가도, 문제가 해결되면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른 듯한 태도로, 자비하신 하느님을 도외시하고 배은하는 거짓된 신앙의 자세는 이제 버리도록 하자. 그분은 다만 일 초, 일 분, 한 시간을 기도하더라도 당신과 마음을 함께 나누는 제자를 원하신다. "너희는 나와 함께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란 말이냐?"(마테 26,40)

                                                                                                                                                                  (47M)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요한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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