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믿음 희망 사랑/강론, 묵상

행복과 불행

by 大建 2014. 9. 10.

연중 제23 주간 수요일(루까 6,20-26)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행복한 사람과 불행한 사람을 대비시키고 있다.

행복                                                                  불행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 나라                                   부유한 사람들, 이미 위로 받음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배부를 것                            지금 배부른 사람들, 굶주리게 될 것.
지금 우는 사람들, 웃게 될 것                                  지금 웃는 사람들, 울게 될 것
박해받는 사람들,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거짓 예언자들과 같은 말로.

여기서 주님께서 행복과 불행의 이유로 내세우시는 이유가 모두 미래형임을 주목하자.
현재 불행한 것이 불행한 것이 아니요, 곧 행복하게 될 것이며, 현재 행복한 것이 행복한 것이 아니요, 곧 불행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인 것이다.

인간은 흔히 현재 가지고 있는 것,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만족하면 행복한 것이고, 불만족하면 불행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주님께서는 행,불행의 기준은 현재가 아니라 미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미래는 하느님 나라이다. 가시적인 오늘, 현재에만 매달려 살 때 우리는 불행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비가시적인 내일, 그러나 오늘 시작되는 미래인 하느님 나라 안에서는 그것이 행복이라는 말씀이며, 그 반대도 또한 마찬가지라는 말씀이다.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 오늘, 현재에만 시선을 고정시키고 살면, 비록 지금 행복하다고 느낄지라도 실제로는 하느님을 도외시 하고 살기에 보이지 않는 미래로서의 하느님 나라에서의 불행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이요, 현재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도 그 불행으로 말미암아 하느님께 의탁하고 살아간다면 오히려 참된 행복의 주인이신 그분과 함께 하는 절대적 미래인 하느님 나라에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이니 사실상 행복한 것임을 깨달으라는 말씀이다.

---------------
중국 한나라의 유안(劉安)이 쓴 회남자(淮南子)라는 책의 <인간훈(人間訓)>이라는 장에 보면, "화복동문(禍福同門)"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우리네 인간사에서 화와 복, 불행과 행복은 원래 같은 문으로 드나든다는 뜻이다. 행복과 불행이 원래 별개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예를 드는데, 변방에 사는 새옹이라는 지혜로운 늙은이에 관한 고사가 나온다. 그것이 바로 새옹지마(塞翁之馬)다.

변방의 작은 마을에 어느 늙은이가 살았다. 그는 아주 좋은 말을 기르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말이 변방을 넘어 오랑캐가 사는 지역으로 도망갔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이 와서 위로를 한다.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그런데 노옹은 슬픈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말한다. "오늘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리 슬퍼할 일이 뭐가 있으리요!"
수개월이 지났을까, 어느 날 그 도망갔던 말이 오랑캐 지역의 아주 훌륭한 말 한 필을 달고 돌아왔다. 동네 사람들은 노인에게 와서 축하 인사를 한다. 그러나 노인은 전혀 기쁜 내색을 하지 않고 말한다. "오늘의 복이 내일의 화가 될 수도 있으니, 그리 기뻐할 일이 뭐가 있으리요!"
새옹에게는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는 말타기를 즐겼다. 어느 날 그 아들은 새로 들어온 준마를 타고 달리다가 그만 말에서 떨어져 다리 병신이 되고 만다. 그러자 온 동네가 초상집 분위기였다. 동네 사람들이 모두 찾아와 노인을 위로한다. 그러나 새옹은 슬픈 기색을 짓지 않고 말한다. "지금의 화가 내일의 복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니, 그리 슬퍼할 일이 뭐가 있으리요!"
그리고 일년이 지났다. 변방의 오랑캐들이 침략하여 전쟁이 일어났다. 마을에 있는 청년들은 모두 징발되어 전쟁터로 나갔다. 그리고 열 중 아홉이 목숨을 잃게 되었다. 그러나 새옹의 아들은 다리 병신이었기 때문에 병역이 면제되어, 목숨을 보전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오늘 복음을 통하여 주님께서 근본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재물과 같은 가시적인 것, 현실적인 것, 유한한 것을 절대시하고 거기에만 매달리지 말고, 비가시적이고, 미래지향적이며, 무한한 실재로서의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를 절대시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 행복과 불행 선언이 당신 "제자들에게"(20) 즉 당신을 따르는 그리스도신자들에게 하신 말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를 믿지도 않고 따르지도 않는 이들에게는 "하느님 나라, 미래의 불행" 등은 정말 의미없는 뚱딴지같은 소리로 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경고인 동시에 잠언이 되는 소중한 가르침임을 깨닫고 그 진리를 마음에 담고 살기로 하자.

                                                                                                                                                 (46T)


현세의 행복은 순식간에 날아가버리고 마는 것!













'믿음 희망 사랑 > 강론, 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십일조  (0) 2014.10.15
표리부동 (表裏不同)  (0) 2014.10.14
밤을 새우며 기도하셨다  (0) 2014.09.09
깨어 있음  (0) 2014.08.28
회칠한 무덤  (0) 2014.08.27